치유하는 영어

발리에서의 "짜증나"

RomiT 2019. 2. 12. 13:16

나는 발리를 참 좋아한다. "신들의 섬"으로 잘 알려진 아름다운 열대의 섬. 어딜 가나 풍성한 녹색이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어주는 곳, 바다도 산도 깊고 푸른 곳. 

내가 발리에 반한 순간은 길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짜낭(canang)을 발견했을 때였다. 바나나 잎과 얇게 자른 대나무를 엮어 만든 손바닥만한 바구니에 색색의 꽃과 약간의 과자, 혹은 쌀밥을 넣어 신에게 바치는 공양물인 짜낭은 깊은 산의 계곡에도 면세점 바닥에도 놓여있다. 안에 든 약간의 음식은 거리의 개나 고양이, 원숭이들이 먹는다. 색 바래져가는 꽃과 향 태운 흔적만이 남은 짜낭은 해질녘이 되면 행인들의 무심한 발길에 채여 온통 찌그러지고 때가 타는데, 발리 사람들은 눈 꿈쩍도 하지 않고 다음날 아침이면 또 새 짜낭을 그림같이 예쁘게 만들어 문 밖에 내놓는다. 그런 태연함이, 무심하지만 확고한 삶의 태도가 좋아서 나는 발리에 몇 번이고 돌아갔었다. 

얼마 전에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 친구를 꼬드기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인도네시아 발리까지는 아주 멀다. 직항은 아예 없어서 보통 일본이나 싱가포르를 경유한다. 우리는 다른 친구의 결혼식장에 함께 앉아 맥주를 앞에 두고 들뜬 얘기를 나눈 끝에 그 모든 여정에도 불구하고 갈 가치가 있는 곳이 발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친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인천공항으로 날아와 나를 만날 것이고, 우리는 함께 발리로 떠난다.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아름다운 열대의 섬을 마음 맞는 친구와 여행한다면 혼자 다닐 때보다 훨씬 즐거을 거라는 기대로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신나고 순조로운 여행에 대한 기대는 여행 3일차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발리 본섬에서 더 작은 섬으로 들어가야 하는 날 내가 터무니없는 실수를 해서 배를 놓쳤고, 우리는 뙤약볕 아래에서 다음 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예쁘고 신나는 발리를 경험하게 해 주겠다고 큰소리 치는 나를 믿고 온 친구에게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자괴감이 들었다.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 좌절이 다른 실수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번뜩 작은 섬에서 쓸 현금이 충분한가를 생각해 보고 섬 안에 현금인출기가 있는지도 검색해 보았다. 신용카드는 많은 곳에서 통용되지 않을 거였다. 

그리고 나는, 헐레벌떡 현금을 인출하러 다녀오는 길에 그만 신용카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앞으로의 일정이 절반도 넘게 남은 상황에서 신용카드를 잃어버리다니, 식은땀이 나고 위가 아파왔다. 패닉에 빠지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지만 쉽지 않았다. 방금 뽑은 현금을 다 쓰면 친구에게 나머지 경비를 전부 빌려야 할 판이었다. 이후의 이틀 정도는 친구와 웃고 떠들고 외딴 섬의 꿈결같은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고 원숭이를 구경하고 절벽 다이빙을 하는 와중에도 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최대한 빨리 신용카드를 재발급 받아 내 손에 쥘 수 있을까"만을 생각했다. 

이왕 이렇게 된거 어쩔 수 없지! 빌려서 갚으면 되잖아! 하며 뻔뻔하게 구는 것도, 이런 나라서 미안하다며 울상을 하고 친구만 따라다니는 것도 싫었다. 그 둘 중 어느 것도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느끼는 좌절과 패배감이 여정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면서도 내가 처한 곤경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야 했다. 

한국의 추운 겨울을 견디며 꿈꿨던 최고의 여행은 고사하고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 친구와의 앞으로의 관계를 걱정해야 하는 판이었다. 친구도 집에서 멀리 떠나와 낯선 나라를 여행하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시차와 여정 때문에 캘리포니아에서 발리에 오려면 나보다 휴가를 이삼일은 더 내야 했다. 나 때문에 하고 싶은 여행이 다운그레이드되거나 우울해질까봐 나는 정말, 정말 미안하고 불안했다.


정말이지 긴 이틀이었다. 우리는 남은 여정 동안 묵을 호텔의 등급을 조정했고, 사야 할 물건의 목록을 줄이고, 친구는 그 가운데 자꾸 돈을 빌려주겠다 했고, 나는 할 수 있는 한 버텨보겠다 했다. 여행은 생각보다 잘, 상상한 것처럼 풍요하진 않았지만 즐겁게 흘러가고 있었다.


여정은 천천히 다시 즐거워졌고, 발리를 떠나기 전날이 되자 우리는 각자 미국과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사고 길거리 음식을 먹어보느라 들떴다. 예쁜 카페와 음식점을 찾아 돌아다니기도 했다. 나는 마음을 놓고 지출하느라 현지 돈을 거의 써 버렸지만 내일이면 돌아간다는 생각에 불안하지 않았다. 이 곡절 많았던 여행을 행복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공항을 웃으며 떠나고 싶었다. 친구에게도 이 여행이 좋은 기억으로 마무리되길 바랐다. 우리 사이는 아주 좋았다. 일주일간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가족에 대해, 관계에 대해, 언어에 대해, 인생에 대해, 용서와 감사에 대해. 내가 한국어-영어 사이의 감정 언어에 대해 연구하고 있고 이게 지금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라고 했을 때 친구는 아주 진지하게 들어주었었다. 

다시 여정의 마지막 전날로 돌아와, 마음이 풀어지고 신이 난 친구는 나에게 선물 살 돈을 빌려주겠다고 또 한번 제안했고, 나는 그러자고 했다. 다만 이제 친구에게 남은 것은 미국 달러라서, 우리 여행하는 동안 종종 그랬던 것처럼 거리에 즐비한 사설환전소 중 한 군데에서 돈을 바꿔야 할 거였다. 우리는 둘이 역경을 극복했다는 생각에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신나게 발리의 거리를 쏘다니다가 만난, 환율을 아주 후하게 쳐주는 환전소를 발견했다.(나중에 생각하면 수상할 정도로 후했다)


골목 약간 안쪽에 있었지만 밝은 대낮이었고, 거리에 사람과 차가 지나다니는 것이 아주 가까이 보이는데다, 거기 서 있던 현지 남자는 아주 친절해 보였다. 당당하고 똑똑하게 행동하는 한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가득차 있던 우리는 그러나 거기서 환전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미화 40불 정도로 아주 큰 돈은 아니었지만 당한 건 당한 거였다. 


이미 택시를 타고 20분을 달린 후에 큰 쇼핑몰에 도착해서야 우리는 돈이 빈다는 것을 알았고, 두 번 세번 돈을 다시 세며 확인해 보았고, 그제서야 그 환전소가 제대로 된 사무실이나 부스가 아니었다는 것, 남자가 굳이 작은 단위의 지폐를 아주 많이 꺼냈다는 것, 정신없이 돈을 세는 우리에게 자꾸 말을 시켰다는 것이 기억났다. 환전 전에 작성해야 하는 작은 전표도, 환전이 끝나고 받아야 하는 영수증도 쏙 빠진 과정이었다는 것도 이제야 생각이 났다.


그럴 리가 없어, 아까 내가 다 확인했는데? 둘이 같이 돈을 셌는데? 나머지 돈은 어디에 있지? 아까 기억나? 분명히 다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우리가 사기당했다고 확정지으며 친구는 한국어로 말했다. "You know what? This is 짜증나.(야, 이게 짜증나는 거야.) 나 지금 짜증나." 

나는 그 말을 한번에 알아들었다. 친구는 신경이 거슬린다고(annoyed) 말하는 게 아니었다. 좌절과 배신감, 당황스러움을 한번에 표현한 거였다. 그는 여덟 살에 미국으로 가족과 이민을 떠난 후 정식으로 한국어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집에서 부모님과 상호작용하고 이민자 사회의 교회 커뮤니티에 몸 담으면서 한국어의 맥락을 느슨하게나마 그러나 직관적인 확신으로 파악하는 사람이었다. 

모르는 곳에서 길을 잃었을 때의 그 짜증나, 모든 일이 잘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는데 생각도 못한 장애물을 만났을 때의 그 짜증나, 생사를 가를 정도로 큰 실패는 아니지만 당장 쉽게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는 아닌 실패를 경험할 때의 그 짜증나였다.

내일 떠나는데, 우리는 이미 어디서 멋진 저녁을 먹을지도 다 정해놨는데, 여자 단둘이 여행하며 낯선 얼굴들과 부딪히는 이 긴장이 내일이면 끝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진 못하더라도 이제야 마음 놓고 약간의 방탕을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타이밍에, 아, 네가, 훼방을 놓다니. 우리의 신남을 방해하다니. 

우리는 돈이 비는 것을 처음에 확인하고 혼란스러웠다가, 경악했다가, 좌절했다가, 화가 났다가, 그리고 그 친절하고 느긋한 태도로 우리를 감쪽같이 속였다는 비릿한 배신감과 스물스물 감겨드는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좀전까지만 해도 세상은 우리의 놀이터였고 우리가 못 할건 없어 보였는데, 햇살도 찬란하고 더위는 견딜만했는데, 온통 냄새맡고 맛보고 취할 것 투성이였는데, 지금은 좀 달랐다. 갑자기 우리는 생각만큼 안전하지는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분노하다가 "지금이라도 돌아가볼까? 아무렇지 않게 돈 달라고만 할게. 아까 우리 기억하냐는 말 같은 거 안하고 그냥 야, 우리 돈 가지러 왔어, 줘, 라고만 할게."라고 제안하자 친구는 힘없이 됐다고 했다. 그럴 가치 없다고. 처음엔 비슷한 경악을 공유하다가 나는 점점 화가 났고, 친구는 점점 불안해했다. 

일단 쇼핑몰을 나와 천천히 거리를 걸으며 우리는 짜증나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가 얼마나 황당한지(upset), 화가 났는지(angry), 경악했는지(panicked), 또 좌절스러운지(frustrated), 그리고 마침내 안전하지 않다고(unsafe) 느끼는지에 대해서도. 거기 더해 신용카드를 잃어버려 돈을 빌려야 했던 내가 얼마나 미안한지,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게 만들어서 죄책감을 느끼는지에 대해. 그 모든 것이 짜증나가 되어선 안된다고, 우리가 서로에게 짜증을 던져선 안된다고.

갑자기 우리에게 밀려온 부정적인 감정을 짜증나로 마무리하고 이 여행을 끝낼 수는 없다고 우리는 의기투합했다. 우리는 계속 환전하던 당시의 상황을 복기했고, 우리의 어리석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거기에 대해 화를 냈으며, 또 좌절감을 위로하고 결국 여행을 통틀어 함께 겪은 가장 나쁜 일이 이거라니 얼마나 다행이냐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감정 덩어리가 갈 곳 없는 억울함으로 변하기 전에 배신감을 분별해 내서 스스로를 이해했다. 40불을 사기당한 건 유감스러운 일이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책망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더 똑똑하게 굴 수도 있었지만 그것뿐이다. 스스로를 탓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교훈을 얻었으니 앞으로 더 조심할 것이고,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해줄 이야기거리가 하나 생겼다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바보같은 표정으로 함께 셀카를 찍었다. 우리는 좀 지쳤지만 행복했다. 우리는 그 여행이 잘 끝났다는 걸 알았다. 아주 긴 감정의 여정 끝에서 느끼는 충만감과 안도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