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속이는 말, "사랑해서 그랬어".
"4등"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대회에서 늘 4등만 하던 어린 수영 영재를 1등 하는 천재로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어머니와 코치의 이야기인데, 코치가 아동을 몰아세우며 훈련시키는 모습들이 내게 너무나 친숙한, 그리고 아마 많은 한국인들이 성장과정에 경험했을 그루밍grooming의 전형이라 놀라웠다. 아직도 아이들이 저런 방식으로 배우는구나 싶어 좌절스럽기까지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소년은 숨이 턱까지 차도록 수영장 레인을 왕복하지만 코치의 대걸레자루 세례를 받고, 젖은 등에 멍이 들 때까지 맞는다. 그리고 코치는 아이를 분식집으로 데려가 떡볶이와 핫도그를 사주면서 "너 잘 되라고 때리는 거지 미워서 그러는 게 아니다"고 은근한 태도로 달랜다. 아이는 반복해서 맞고, 욕설을 듣고, 또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하지만 그 이후에 따라오는, 코치의 "나도 어릴 때 더 맞았어야 더 성공했을 거다"는 중얼거림과 다정한 마사지에 입을 꾹 다문다. 몸에 온통 멍이 들어도 어른에게 알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폭력적인 코치를 만나기 전보다 더 의욕적이고 결의에 찬 모습으로 새벽마다 수영복과 수경을 챙긴다.
소년이 영화에서 메달을 땄는지 아닌지 내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폭력에 길들여졌고 자신도 모르는 트라우마를 기꺼이 받아들였는지, 자신의 상처를 살펴보고 가슴 아파하는 보호자에게 "그게 아니라, 내가 정신을 안 차리니까... 집중하라고..." 라며 오히려 가해자를 편들게 되었는지를 관찰하는 일이 매우 흥미로웠고 동시에 슬펐다.
수영 영재는 결국 더이상 맞기 싫다며 코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만, 얼마나 많은 아동들이, 약자들이,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외로운 사람들이 그런 식의 불링bullying과 그루밍에 길들어 그것이 애정의 일종이라 믿고 있을까를 생각하며 나는 매우 착잡해졌다. 육체적 폭력도 이런 심리적 게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언어는 육신의 고통을 정당화시켜 다시 폭력의 사이클로 돌아가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며, 또한 분명한 지표로 여겨져야 한다. 욕을 하고 사소한 일에 트집을 잡고 소리를 지르며 부정적 강화를 하다가, 한바탕 매질이 끝나고 나면 상냥해진 말씨로 희망찬 단어들을 남발하며 안아주는 긍정적 강화를 반복하는 일은, 인간의 마음을 염증에 시달리게 해 딱딱하게 굳어진 상태로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이다.
"사랑해서 때리는 거다", 혹은 "너를 미워하기 때문에 너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게 아니다"는 익숙한 선언은 그 자체로 매우 모순되는 문장들이다. "사랑하는데 왜 때려?"라고 물으면 정말 할말이 없다. 사랑을 음침하게 비틀린 어떤 관심으로 재정의한다면 사랑해도 해치는 일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상대를 지배하고 감정을 닳게 만들어 무감각하고 수동적인 인간이 되게 만들고,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라며 세상을 무서운 곳이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주입하고, 다른 친밀한 관계와 단절시켜 아무리 상처 입고 괴로워도 자기를 찾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그런 치밀한 심리전이 사랑이라면.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어떤 종류의 애정도 그 대상을 상처입히는 식으로 표현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에는, 사실 아무 사랑도 들어있지 않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It's nothing personal)며 위해를 가하는 것과 사랑을 들먹이며 해치는 것도 구별되어야 한다. 전자는 상대가 미워서 상처를 주는 게 아니라 자기에게 아무런 선택권이 없거나 권위 있는 존재로부터 지시를 받았다는 맥락에서 쓰이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때린다는 것은 때리는 자의 온전한 선택을 의미한다.
1. 나는 너를 사랑하고
2. 동시에 너를 때리기로 선택했다는 뜻이다.
그런 선택을 해야만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또는 그런 선언을 하면서 완전히 배치되는 두 동사를 한 문장에 쑤셔넣을 이유가 있는, 논리적으로 매우 무리한 변명을 해야 하는 폭력이 애정일 리가 없다. 사실은 그 순간 미운 마음이 커져서 때린다는, 네가 나중에 잘되든 아니든 이 매질이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고백이다.
사랑과 폭력간의 거리는 먼 것이 정상이다. 그게 사랑이 하는 일이다. 사랑과 해치는 일이 한 문장 안에 들어있거나 일종의 순환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정말, 아주, 명백히, 틀렸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아야 한다. 그 때가 도망칠 타이밍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