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도 안 지려고 든다." 한국어는 지면 안되는 언어
질문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마디도 안 지려고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 질문하는 것이 따지고 드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라도, 이기고 지는 것에 집착하는 언어적 특성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한국어는 언어적 밀치기에 최적화된, 일종의 말로 하는 닭싸움에 능숙한 언어다. “고객”에 “님”을 붙이고도 안심이 안되어 “께서”를 동원하여 혹시라도 기분이 상할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수준부터, 뭘 누구에게 달라는 것인지 주어도 목적어도 생략된 “내놔.”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위계가 이 미세한 언어의 눈금으로 구분될 수 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젊은 여성에게 중년의 남자가 “여기는 뭐가 맛있어요?”로 무난한 경어를 쓰는가 싶더니 곧 “아이, 난 생선은 안 좋아하는데.”고 슬슬 존대가 실종된 밀치기를 시도하고, 상대가 묵묵히 받아들인다 싶으면 “그럼 그거 줘봐.”로 빠르게 무례해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 언어를 사용할 때 그래서 한 마디도 안 지고 시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 마디를 지면 지기 때문이다. 모든 상호 소통은 어떤 면에서 왈츠이고 또한 전쟁이지만, 한국어는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피로한 종류의 전쟁터이다.
단순히 존대와 반말의 차이가 아닌, 주어를 자주 생략하고 질문을 싫어하고 말을 하다가 마는 것 모두가 한국어 사용자가 치러야 하는 전쟁에 포함되며 이는 또한 사회에서 위계가 낮을수록 치열하게 치러야 하는 전투가 많음을 뜻한다.
그 미세함과 통제력의 정도야 다르지만, 존칭을 사용하는 언어는 한국어 외에도 많다. 2011년 프랑스 트위터에서 이 존칭 때문에 큰 언쟁이 일어난 적이 있는데, 한 언론사의 편집장이며 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로랑 조프랭이 한 팔로워와의 대화 중에 “당신이 나에게 vous(2인칭의 존칭) 대신 tu(2인칭의 비격식)를 써서 말해도 된다고 누가 허락했느냐”고 말한 것 때문이었다. 불어에서의 격식체인 vous는 나이 차이가 많은 윗사람에게, 혹은 모르는 사람에게,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사용되지만 온라인의 익명인 대화상대에게는 간단하게 tu를 쓰는 것이 암묵적인 룰처럼 되어 있는 트위터에서 갑자기 비겁하게 굴었다며 조프랭을 비난하는 여론이 일었다. 조프랭은 다음 해에 트위터를 그만두었다.
이 사건 이후로 스페인어나 이태리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를 예로 들며 불어에서도 2인칭 존칭이 점차 사라질 것인가에 대해 언어학적으로, 그리고 사회학적으로 질문이 생겨난 바 있다. 스페인어에서도 2인칭 존칭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사라져가고 있으며, 심지어 이태리어는 오프라인 세계에서도 모르는 사람을 부를 때조차 비격식을 사용하는 일이 보통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유럽어에서는 호칭에 스며든 위계가 흐려지는 것이 추세라고 짐작해볼 수도 있는 일이다.
한국어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애초에 한국어에는 만만한 2인칭이 없었지만, 우리가 상대를 “당신You”이나 하다못해 인터넷의 선물인 "님이"라고도 부르지 못하고 “고객님께서 말씀하시기로는…”이라 말할 때에 거기에는 어떤 21세기의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누군가 "너는 한마디도 안 지려고 한다"고 할 때 그건 사실 칭찬이 아닐까? 해당 언어의 본질을 내가 잘 파악하고 있다는, 자기의 위계와 합쳐졌을 때 심신을 매우 편안케 하는 이 언어를 온전히 통제하지 못하도록 내가 가로막고 있다는, 불편하다는 신호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