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 안의 랩터
나는 지금 격리구역 D-9에 와 있다. 화성의 토양에서 발견된 미생물을 배양하는 것으로 시작했던 외계생물 연구는 초반의 열광과 흥분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안티움이라 이름붙여진, 차라리 박테리아에 가까웠던 이것은 실험을 시작한 한달 전부터 주변의 모든 유기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 몸집을 불려왔다. 일주일 전에는 우주정거장 내의 컴퓨터를 조작해 오작동을 일으키더니 삼일 전부터는 분열을 시작했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다 간헐적으로 번식을 멈추는 안티움은 이제 지구에서 송신되는 케이블 티비 채널의 영상 정보를 닥치는 대로 빨아들여 상상 가능한 모든 생물의 형태로 스스로를 진화시키고 있다. 포식자로 진화할 만큼 커지면 인간을 삼켰다. 초식동물도 간간히 보였었지만 이젠 모두 지루해졌는지 더 치명적인 이빨을 가진 무언가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놈들은 해치를 쿵쿵 두드리거나 울부짖거나 갑자기 스피커에서 찢어질 듯한 고음을 방출해 승무원들을 공포에 질리게 했다. 통신이 두절된지 일주일째여서 서로의 안위를 확인할 방법은 운좋게 마주치는 것 뿐이었다.
이틀째 한숨도 자지 못했다. 여기서 나갈 방법은 복도로 이어진 저 문을 통과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문 밖에서는 컬러풀한 랩터가 조그만 창문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유기체로 진화한 모든 안티움들은 온갖 총천연색으로 피부와 발톱까지 색상을 나노 세컨드 단위로 계속 재설정하고 있어서 쳐다보면 눈이 아팠다.이틀째. 저 발톱에 걸리면 목뼈가 부러지고 아랫배가 캔버스 천처럼 찢어질 것이다. 차라리 산 채로 씹히기 전에 숨이 끊어지는 편이 나을 것이다. 4평 남짓한 이 공간에서 용변을 해결한지도 오래다. 먹지도 마시지도 자지도 못하고 점점 판단력이 흐려져 간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문을 열어 랩터를 안으로 유인하고 밖에서 닫아 잠가버릴 것이다. 여기서 말라죽느니 빠른 죽음을 택하겠다. 나는 문 밑으로 기어가 랩터의 시야에서 사라진 채로 수 분을 기다렸다. 그리고 불시에 문을 열었다. 랩터는 쏜살같이 안으로 들어왔다. 전신이 시야에 노출되자 눈이 더 핑글핑글 돌았다. 격리구역 안에 들어서서 잠시 멈칫하더니 몸을 둥글게 틀어 바닥에 엎드린 나를 똑바로 노려본 순간, 나는 열린 문 사이로 뛰쳐나가 문을 닫았다. 닫았다고 생각했다. 괴물같은 랩터놈은 뱀처럼 빠르게 목을 끼워넣어 문이 닫히지 못하게 했다. 10센티 두께의 티타늄 문이 엄청난 속도로 목에 부딪혔는데 눈도 깜박하지 않았다. 형광 오렌지색과 레몬색, 짙은 푸른색으로 시시각각 번쩍이는 눈동자 없는 눈이 나를 봤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아마 오래 뛰지는 못할 것이다. 잘해봐야 스무 걸음? 그 전에 잡힐지도 모른다. 금속바닥을 긁는 달리는 발톱소리가 정신없이 들려왔다. 그 때 눈앞에 승강기가 보였다. 한때 스무명이 넘는 연구원과 승무원들을 실어나르던 승강기였다. 지금은 문이 활짝 열린 채로 복도 저편에 그저 서 있었다. 복도에서 1미터 정도 떠오른 채로. 나는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온몸의 혈관이 터져나가라 뛰었다. 왠지는 모르지만 승강기가 작동할 것만 같았다. 랩터의 대가리에서 나오는 뜨거운 호흡이 이마에 느껴진 찰나 나는 장대뛰기 선수처럼 승강기 안으로 몸을 던져넣었다. 랩터는 순간 멈춰섰다. 같이 뛰어오를지 말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몸을 날려 미친듯이 닫힘 버튼을 눌렀다. 제발 닫혀라. 제발 닫혀라.
그러나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엘리베이터는 덜컹 하더니 오히려 밑으로 둥실 가라앉아 복도 바닥에 제대로 내려서 버렸다. 랩터가 고개를 숙였다. 징그럽게 번쩍이는, 색색이 스쳐지나가는 눈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겨우 벌벌 떨리는 하체를 움직여 뒤로 물러나 봤다. 결국 등이 승강기 벽에 닿아 더는 물러날 데가 없고 랩터가 내 코앞에서 입을 쩍 벌릴 때까지.
놈은 숨을 들이쉬더니 이렇게 말했다.
"엘리베이터 안에도 상석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