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하는 영어

"언제 날아왔어?"가 무슨 말이냐고?: 구동사(phrasal verbs)의 숨은 힘

RomiT 2018. 5. 5. 14:26

해외에서 방문한 친구에게 영어로 "너 언제 한국에 도착했어?"라고 물어보고 싶다면 뭐라고 할까? 혹은 "언제 (너희 나라로) 출발해?" 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면? 인천공항 출국장에 내걸린 푯말처럼 departure(출발)과 도착(arrival)을 사용할까? "언제 왔어?"라고 지나가듯 어떻게 물어볼까? come and go를 사용하기는 좀 그런 것도 같고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인천공항에 언제 내렸냐고 좀 물어보고 싶은 것 뿐인데.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히는 사람들이 많다.

북미의 친구들은 이런 경우 간단히 fly in & out(날아 들어오다 & 나가다)를 자주 사용한다. "When did you fly in?"하면 된다. 상대가 도착했을 때 어떻게 왔을지, 그 그림이 어땠을지를 무의식적으로 재구성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언어 사용이다. 

이처럼 개념어(conceptualized language)인 한자를 기반으로 구성된 한국어는 영어처럼 시각정보에 민감하지 않다. 때문에 한국어 사용자인 우리도 언어에 시각정보를 활용하는 것이 익숙치 않다. 한국어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서 들어왔는지, 기차를 타고 달려서 들어왔는지, 걸어왔는지 크게 상관치 않는다. 단 도착인지 출발인지의 "개념"을 묻는다. 구동사의 벽이 여기서 생긴다. 

친구가 스노우보드를 타다 많이 다친 적이 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한동안 휠체어로 이동해야 했다. 그는 자기 소식을 SNS에 올리면서 "나를 방문해주면 너는 나를 데리고 나가서(wheel me out)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도 있어!"라고 적었다. 여기서의 wheel out은 한국어로는 도저히 그대로 재현 불가능한 언어이다. "휠체어를 네가 밀어주면 함께 나가서" 혹은 "휠체어를 탄 나를 네가 데리고 나가면" 정도로 번역하는 수밖에는 없다. 

pull over가 왜 "차를 세우다"는 뜻이 되는지, take off가 왜 "이륙하다"에도 사용되고 "서둘러 떠나다"는 뜻으로도 쓰이는지(혹은 언뜻 반의어처럼 보이는 take on은 왜 착륙이 아닌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나중에도 사용하려면 영어가 채택한 언어의 시각화를 나의 사고체계에 받아들이는 방법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구동사 혹은 동작동사들은 마음먹고 앉아서 외운대도 순순히 습득되는 일이 드물다. 사람이나 사물의 동작을 시각적으로 재생하며 그 동작을 설명하는 영상을 보는 편이 가장 쉽고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이전 글인 "똑바로 서라는 것은 어떻게 서라는 것일까? http://pupper.tistory.com/22 "에서 다루었듯이, 영어가 공간을 인지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동작을 묘사하는 방식은 한국어와 다를 때가 많다. 한자어를 머릿속에 먼저 떠올리고 번역해서는 평생 구동사만 외우며 괴로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수업시간에 자주 사용하는 비디오는 첫번째가 요가 비디오, 두번째가 요리 레시피이다. 요가를 가르쳐주는 비디오는 동작을 수행하면서 이를 말로 묘사하기 때문에 아주 좋은 자료이며, 요리하는 사람이 자신과 사물과의 상호작용을 자세히 풀어주는 레시피 비디오 역시 구동사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영상들은 유튜브에 yoga lessons나 recipes 를 검색하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니 자료가 모자랄까 걱정할 염려도 없다.


또한 영어를 잘하게 되는 것 외에 이런 "언어를 구상하고 내보내는 시스템 자체의 변화"는, 개념어로 세상을 접하던 때와는 다른 감각을 내 안에 자리잡게 도와준다는 더욱 큰 이점이 있다. 

특히 영어가 필요하다는데, 해마다 꼭 올해는 영어공부를 해야지 다짐하는데, 막상 "배워서 뭘 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잘 모르겠다는 한국어 사용자들에게는 "아무하고도 영어로 소통하지 않는다 해도 스스로와 세상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친구가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날아서 들어왔는지, 다음주에도 날아서 떠날 건지, 그래서 "fly safe(안전한 비행 되길)!"이라고 자연스럽게 말해줄 수 있는 언어의 공간이 내 안에 생긴다는 가능성은 수백개의 단어를 외우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다. 


수업에서 구동사 파트를 다룰 때 나는 그 어느 다른 강의를 할 때보다도 동작이 크고 부산스러워진다. pick it up과 pick if off의 차이점을 알려주기 위해 몇번씩이나 마커를 바닥에 던졌다 주웠다 한다. 식재료를 팬에 집어넣을 때 왜 영어가 lay(재료를 조심스럽게 눕히듯 집어넣다)와 drop(팬 안에 떨어뜨리다), 또 dump(다소 무심하게 혹은 거칠게 던져넣듯 하다)를 달리 사용하는지, 그리고 pour(액체를 콜콜 혹은 콸콸 따라넣다)와 drip(뚝뚝 떨어지게 하다) 을 구분하는지를 시각화하게 위해 손도 바쁘게 움직인다. 영상도 항상 함께 봐야 한다.

구동사는 가짓수가 너무 많고 적절히 사용하기 까다롭지만 특히 "미국식의 캐주얼한, 자연스러운 영어"를 구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해 많은 학습자들을 곤란하게 한다. 그러나 구동사가 암기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는 다른 방법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알고 접한다면, 어쩌면 즐거운 여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