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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내가 유학을 떠나던 당시에 관한 이야기다. 오히려 영어로는 수 페이지짜리 에세이로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지만 한국어로는 한번도 시작하지 않았던 이야기. 


2013년 1월 뉴욕 땅을 처음 밟기까지 나는 한번도 미국에 가본 적이 없었다. 미국에 친척이나 친구도 없었다. 유럽 배낭여행과 동남아 휴양 관광은 가본 적 있었어도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나라에 일주일 이상 머물러본 적이 없는 내가, 그 전해 여름에 주운 유기견을 데리고 혼자 뉴욕에 가서 개와 함께 살 집을 구하고 그 개가 입양될 때까지 돌보며 공부도 하리라는, 지금 입 밖으로 꺼내보면 터무니없는 그 계획은 내가 영어 자아를 가졌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영어로 말해도 터무니없긴 마찬가지이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why not? I have the money, I speak the language, and Americans love *exotic* looking dogs!(안될 게 뭐가 있어? 집 구할 돈이 있고, 영어를 할 수 있고, 미국 사람들은 *이국적인* 개를 좋아하는데!)"라고 내 영어 자아가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아주 긴 모험이었기 때문에 간단히 요약하자면, 나는 2012년 여름에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트위터 멘션을 받았다. 연희동 버스 정류장 근처에 진도개 혼종으로 보이는 노란 개가 홀로 돌아다니는데 개장수가 잡아갈 것 같으니 임시보호를 좀 하라고. 왜 나에게 연락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개장수에게 잡혀갈지 모르는 그 개를 한국에서 입양시키려고 매우 노력했다. 

한 번은 단골 신발 수선집에서 소개를 받아 입양갈 뻔도 했지만 막상 만난 그 사람이 너무 수상해 보여 그만두기도 했다.

우리집에는 이미 코카 스파니엘과 푸들이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었고, 노란 개 보리(털 색을 따라 이름을 지어 주었다)에게는 더 자리가 없었다. 나는 미국에 가서 집에 없을 거였다. 좋은 새 주인을 찾아주기는커녕 자전거 뒤에 개를 끌고 달리게 해서 집에 돌아가겠다는 아저씨에게 개를 줄 뻔 했다.


방법은 하나였다. 내가 개를 데리고 뉴욕에 가는 것. 가서 좋은 입양인을 수소문해 거기서 살게 하는 것.



나와 개는 아주 많은 고생을 했지만 결국 계획했던 대로 되었다. 정말 많은, 내가 이전에는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몰랐던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어 그렇게 되었다.


보리는 볼티모어의 한인 가정에 입양되어 원래 그 집에 있던 다른 진도개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주 기세가 살아서 가끔 동네의 야생토끼를 해치려고 해서 고민이라는 이야기까지 전해 들었다. 


나는 무사히 석사학위를 마치고, 아주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 돌아왔다. 지금도 기회가 될 때마다 가서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 친구들도 한국으로 놀러와 나를 만나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아마 내가 100% 한국어 사람이었다면, 그래서 그 언어로 형성한 내가 오로지 모든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누군가에게 이런 무모한 일을 따라하라고 부추기거나 내가 한 모든 일이 옳고 현명했다는 것이 아니다. 나와 개의 인생을 바꾼 그 일을 시작한 것은 사실 "다른 말을 하는 나"였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이고, 이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군가 영어를 잘 말하고 싶은 사람이 이 이야기를 듣고 힘을 얻었으면 한다.


* NYU Literacy Review에 실린 이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영어로 읽고 싶다면 

http://gallatin.nyu.edu/content/dam/gallatin/documents/writingprogram/LiteracyReviews/Literacy%20Review%2012_NYU%20Gallatin_web.pdf

에서 "Journey to New York City with a Homeless Jindo"라는 제목으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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