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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왜 항상 화가 나 있어?" 낯설지 않은 질문이다. 캘리포니아가 고향인 친구 한 명은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오면서 들떴던 마음이 도착 첫날 택시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차갑게 가라앉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다만 흘끗흘끗 시선을 피해서만 서로를 바라보고, 말을 걸지 않고, 웃지도 않고, 아저씨들은 소리를 지른다고.  

나는 그에게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특히 사람을 대면할 때는 항상 정신적인 가드를 올리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어디서 누가 시비를 걸어올지 모르고, "만만하게" 볼지 모르고, 나를 "무시할지" 모른다는 옅은 공포가 안개처럼 모두를 휘감은 곳에서 살아가는 것.

K-rage라는 말이 있다. 한국인들 특유의 불같은 울화와 빠르게 고조되는 공격성을 묘사하기 위해 한국 바깥의 사람들이 만든 조어이다. Kimchi temper김치 성격이라고도 한다. 김치 성격이라는 말을 가장 대중적으로 소개한 사람은 심지어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는 뉴욕 타임스에 소개된 자신의 책에서 "너무도 강렬해서 사람을 죽게 만들 수도 있는 분노"를 김치 성격이라 소개하며 자신도 이런 김치 성격을 갖고 있다고 고백한다. 

나도 누군가와 시비가 붙은 일이 있다. 퇴근길 붐비는 버스 안으로 사람들이 대피하다시피 뛰어들어오는 어느 더운 날이었다. 내가 자기를 노려봤다며 욕지거리를 하는 데서 시작한 말싸움은 서로의 용모를 훑어보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트집을 잡는 유치하고 저열한 인신공격으로 이어졌고 버스 안에서 고성이 오가던 끝에 그는 우리 엄마 욕이라고 추측되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안되겠다 싶어 동영상 촬영을 시작한 나에게 그는 " 이번 정류장에서 따라 내려." 라고 큰소리를 쳤고 나는 뭐라고 하나 보자는 생각에 버스를 내렸다

서로 목소리를 낮춰라, 삿대질을 하지 말아라, 반말을 하지 말라(이미 서로에게 쌍욕을 후에) 좀스러운 지적을 해가며 싸울 거리가 있어서 싸우는 건지 그저 상대방의 트집을 잡고 싶어 싸우는 건지 모를 말싸움이, 최고기온 36도를 육박했던 그날 30 가량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초반의 격렬했던 대거리가 일종의 대화로 바뀐 다음부터는 "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는가" 대한, 반복되는 지겨운 도돌이표 노래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코미디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왠지 물러서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그쪽이 내 외모를 헐뜯으면 나도 네 두상 이상하게 생겼다고 맞서고, 결혼 못했지 라고 소리지르면 넌 대학은 나왔냐? 고 응수했다. 정말, 너무 피로한 일이었다. 지옥에서 추는 왈츠 같았다. 그쪽의 두상이 팔각형이든 매끈한 타원형이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쪽이 대학을 나왔든 어제 박사학위를 받았든 상대의 학력이 나의 존재를 선언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내가 그만두고 싶은 생각에 "오해해서 미안하다, 사과한다"고 하자 "그게 사과하는 태도냐"며 트집을 잡았는데, 그 다음이 더 우스웠다. 내가 사과한 일에 더 화를 내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사과함으로써 도덕적인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를 했고 그것 때문에 이 이상한 언쟁의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비열한 전술을 썼다는 식이었다. 아까는 죽일 듯이 욕하다가 불과 5 후에는 서로 상대방보다는  상스럽고  불쾌했다고 주장하느라 바빴다. 


서로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들으면 자존심이 크게 다치는 것마냥 열심히 끼어들어 자신의 선의와 결백을 주장했고, 결국 핏대를 올리며 싸우던 그와 나는 사실 "죽어버려!"라고 말했어도 똑같았을 말투로 미안하다고 서로에게 소리치고 자리를 떴다. 너무 소리를 질러서 하루종일 목이 아팠다.          

지나가는 사람들이야 보든 말든, 설령 누가 우스운 꼴을 인터넷에 생중계하고 있다 해도 나는 물러설 없었다. 나는 네가 맘대로 시비 걸어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공격과 도전을 환영한다. 내가 점잖게 물러나면, 장애인과 여자를 동시에 비하하는 욕으로 나에게 언어적 접촉을 시도한 너는 내가 무서워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네가 보인 빠르고 강렬한 공격성을 여자들이 두려워하고 그에 상처받는다고 믿을 것이다나는 네가 대표하는 모든 것을 반대한다. 나는 네가 믿는 모든 것을 증오한다. 나는 네가 나를 모욕하는 것보다 아주 조금씩만 너를 모욕할 것이다. 나는 너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경멸하고 그리고 그리고...

분이 가라앉고 시간이 지난 후에 돌아보면 쓸데없이 비장하기까지 사고의 전개였다. 그쪽의 속도와 언어에 맞춰 나도 빠르게 비열해지고 말았다. 얼마나 그의 대항이 되려고 결심했으면 " 따라 내리라" 버스에서 내리며 교통카드를 찍는 보고 나도 왠지 없어서 따라 찍었고, 나중에 얘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은 모두 여기서 박장대소했다.

 

나는 분노를 믿는다

온몸이 타들어가는 같고 손끝마저 떨리는 분노의 불길, 빨라지는 심장박동, 상대방의 말에 맞받아칠 것만을 생각하며 회전하는 두뇌, 코앞이 절벽이라 할지라도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게 만들 듯한 아드레날린

그러나 폭발이 끝나고 보면 그건 분노만은 아니었다버스에서 그 거대한 청년과 입씨름을 한 후에, 나는 나를 길에서 30분간 소리를 지르게 만든 그 화의 실체에 대해 며칠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분노가 아니었다. 상대의 예상되는 공격성에 나도 비슷한 적의로 재빨리 무장하는 연극 같은 거였다. 그것은 차라리 순수한 적의, 목적 없는 파괴를 향한 동력, 갑자기 빠르게도 생겨나는 원한, 복수심, 절망 같은 것들이 합쳐서 마침 내 앞에 있는 상대 앞에서 터지는 폭탄 같은 거였다. 누군가는 울화라고 부르며 몸져 눕고, 어디선가는 홧김에 그랬다고 하면 살인도 용서해주는 그런 감정의 폭탄. 

이건 일종의 집단 히스테리가 아닐까, 병증의 증세가 아닐까, 울화나 한이나 홧병 같은 이름 말고 진단을 내려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나를 죽이든 남을 죽이든 무언가를 태우고야 진정되는 불길, 그것도 나보다 약한 사람을 향해 더욱 빨리 점화되고 도처에 도사린 곳에서는 두려운 마음 없이는, 혹은 나도 언제든 상대를 파괴하겠다는 각오 없이는 버스 한 번 타기가 힘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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