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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세다"는 말에 대해 두 번 생각해보지 않고 쓰던 시절이 있었다. 주로 동료 여성들에게, 특히 나보다 어린 여성에게, 그리고 동물에게 사용했다. 그들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은 때, 그리고 그들이 자기 지위에 걸맞지 않게 분노를 공적으로 표출할 때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형용어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구글 검색어 자동완성에 "드센 여자친구"는 있어도 "드센 남자친구"는 없다. 누군가는 "저러더 드센 여자래요. 드세면 안 좋은 건데. 뭐가 드세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면 안 드센 여자에요?" 라고 집단지성에 도움을 요청한 글이 보이기도 한다. 이 질문에는 다수의 답변자들도 갈팡질팡한다. "생활력도 있고 추진력도 있고, 자기 생각도 강한 사람이란 뜻도 있는 거 아닐까요."라며 좋게 해석해 주는 위로의 글이 있는가 하면,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이런 예문도 있다. "대단히 무지하며 포악하고 드센 데가 있다." 무지와 포악 다음에 나오는 단어라 생각하면 어떻게 봐도 칭찬은 아니다. 

생활력과 추진력이 있으며 동시에 무지하고 포악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아무래도 "자기 생각이 있다" 는 부분은 마음에 걸린다. 자기 생각이 있다, 말 그대로 "having my own ideas"를 이렇게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가진 평가로 몰아넣는 일은 공정하지 않은 것 같다. 

드세다는 말이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는 것일까. 그러면 실제로 남을 때려서 다치게 한 범죄자를 우리는 드세다고 묘사할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연쇄살인범부터 술에 취해 입간판을 때려 부수는 남자까지, 우리는 남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을 드세다고 부르지 않는다. 드센 사람은 남을 때리는 사람이 아니다. 드센 건 대체 무엇일까.

누군가 "드세다"고 평가하는 내가 어떤 모습인지 들여다보자. 나는 얼굴을 약간 찌푸리고 있고, 상대와 얽히기 싫다는 듯이 상반신을 약간 뒤로 뺀 상태이며, 다른 이들에게 동의를 구하듯 좀 큰 소리로 말한다. 저 사람 드센 사람이야. 자기 생각이 있는 사람이야. 저 사람에게 자기 생각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불쾌하게 해. 


타인을 드세다고 부르는 것은 자기고백에 가깝다. "여자가 저렇게 드세면 남자들이 안 좋아해.", "어린 놈이 당돌하네.", "쪼끄만 게 맹랑한 소리를 하네." 등의, 상대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씁쓸함과 약간의 비통함 그리고 악의를 담아, 좀 복수하듯이 이르는 소리다. 남을 드세다, 당돌하다, 맹랑하다고 부를 정도의 권력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는, 혹은 그런 권력을 선언하고 싶다는 무의식의 목소리다. 상대가 "나더러 그세대, 드센 건 안 좋은 건데. 내가 뭘 고쳐야 할까? 난 뭐가 잘못된 걸까?"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담은 bullying이기도 하다. 

화자와 청자의 권력차가 없으면 그 뜻이 절반 이상이 날아가 버리는 언어는 경고신호다. 그 자리를 디디면 안 된다는, 거기 웅덩이가 있다는, 세상의 늪과 숲을 구분할 수 있다는 아마 늪이 거기 있을 거라는 표지이다. 자기 생각이 있는 인간이 나쁜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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