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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내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 중 한 명과 카카오톡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으로 시작한 대화 끝에 그는 “피곤하고 사는 게 넌더리난다”고 말했다.

임금은 물가가 오르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늙은 것은 무서우며 돈 없이 늙는 것은 더욱 무섭다고. 노년에 폐지를 줍는 삶을 살면 어떡하나 걱정이 된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걱정이다. 일일이 말하기에도 벅찬 고민들이다. 나 역시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지만 하는 일마다 희망했던 대로 되지는 않는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밤잠을 설치는 일도 자주 있다.

그래서 일단 “나도 지친 상태이다(I’m exhausted, too)”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지친 것과 공포는 구분해야 하며, 머릿속에서 공포를 만들어 내지는 말아야 하고, 그 상상된 공포 때문에 지금 비참한(miserable) 것은 미래에 폐지를 줍는 것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사는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도 말해주었다.

물론 젊은 세대와 노년층의 가난은 집단적이고 총체적인 문제이며 모두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한다. 임금은 낮고 물가는 비싼데 갖춰야 하는 물건은 점점 많아지고 고용은 불확실하며 수명은 길어진다. 어떻게 다수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예측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내가 열심히 살지 않는, 혹은 덜 배우거나 착하게 살지 않은 탓이겠는가?

그러나 이 모든 질문들은 핀을 꽂아 더 큰 게시판에 더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올려두어야 할 것들이고, 내가 하나의 개체로서 잘 기능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질문들은 또 따로 있다.

나는 지금 무서운가? 무엇이 나를 무섭게 하고 있나? (블로그의 "질문하기"와 "나는 오늘 어때?"를 참고)

“무서운 것(늙는 거 무섭고 돈 없이 늙는 건 더 무서워요)”은 내가 공포fear를 느끼고 있다는 명백한 언어 신호이고, 공포는 뇌의 편도체를 자극해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 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리고 신체의 "싸울 것인가 도망갈 것인가fight or flight를 결정하는데 집중하는 능력"을 극대화시킨다. 그러므로 공포를 느끼는 상태는, 시간을 들여 근거를 수집한 후 논리적인 결정을 내리거나 스스로를 잘 돌보아 주기에는 적절한 상태가 아니다.

공포, 특히 "가짜 공포"와 실제적인 위험을 분리하자. 

"이렇게 살다가는 나중에 폐지 줍는 할머니가 될지도 몰라" 라고 말하는 순간, 뭔가 마음 속의 짐을 덜어낸 것 같고 후련할(feel relieved) 수 있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최종 그림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그 한 마디가 "길에서 폐지를 수집하고 있는 할머니"라는 실체를, 오직 공포라는 감정만으로 하나의 상징으로 사용하여 나의 삶과 연결하는, 상당한 근거는 없는 발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역시 해 보아야 한다. 지금 나의 고통과 불안은 지금 나의 것이다. 그러나 거기 없었던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필요한 고통이다. 

"당신이 지금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지 않으면 불행한 노년을 맞게 될 것이다" 혹은 "지금 이 보험상품에 가입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변을 당했을 때 매우 후회하게 되었을 것이다" 같은 외부의 잡음들이 어느새 내게 내면화된 것은 아닐까? 


인생의 위험들을 모두 감수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잘 살피고, 그것이 나를 질문하게 하는 것인지, 그래서 내가 답을 찾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겁에 질리게 만들어 더이상의 생각을 닫게(shut down) 만드는 것인지를 잘 구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나도 무섭다. 그러나 내가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공포가 내 행복에 도움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으며 오히려 방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항상 상기하고 있으며, 매분 매초 싸우고 있다. 

그러니 어지럽고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불안하고 무섭다고 느낄 때는 공포가 인간의 역사 중 가장 오래된 감정 중 하나라는 것을 기억하자. 나를 겁주는 주체를 찾아 나서자. 원래는 무섭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무서워하도록 학습시킨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세상에는 공포로 돈을 아주 많이 버는 사업들도 존재하며 그래서 겁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기억하자. 공포가 전염성이 아주 강하다는 것을 상기하자.

 싸울 전략을 세우자. 백 번 싸워 백 번 지더라도, 나는 공포에 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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