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
나는 어릴 때 눈치가 없는 아이였다. 그냥 분위기를 읽을 줄 모르는 것뿐 아니라 분명히 내게로 향하는 냉소적인 빈정거림이나 예의상 하는 말도 잘 구분하지 못해서 멍하니 홀로 남겨지는 일이 잦았다. 마음에 드는 친구가 있으면 하도 옆에서 말을 걸고 귀찮게 굴어서 그 친구가 마침내 치를 떨고 주변에 나의 악행을 고발할 때까지 쫓아다녔고, 나에게 친절한 어른이 "나중에 이모 집에 또 놀러 와."라고 하면 언제 또 놀러가는지를 엄마에게 묻고 또 물어 결국 호통을 듣곤 했다. 한번은 가족 모두가 한강에 놀러 갔다가 밤낚시에 푹 빠진 아빠를 남겨두고 엄마 손을 잡고 돌아오는데, 엄마가 평소 다니지 않던 길로 우리를 이끌었다. 당시 채 개발되지 않아 진흙뻘 투성이에 억새가 내 키만큼 자란 그 길은 엄마와 함께 있어도..
치유하는 영어
2019. 4. 23. 1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