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가까운 바에 뛰어 들어가서 위스키 샷을 급하게 주문한 참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남자친구는 이미 자기 친구들과 근처 술집에 자리잡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제야 퇴근해 홍대에 막 도착했지만 바로 약속장소로 갈 수 없었다. 어쩐지 맨정신으로는 그들을 만날 수가 없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마음 깊이 알고는 있었지만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이름을 댈 수 없었다. 남자친구를 처음 만난지 2주도 채 되지 않았던 때였다. 우리는 온라인 데이팅을 통해 만났고 그는 나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했다. 원래는 이른 저녁에 만나 커피만 마시고 헤어지려고 했었다. 첫만남을 질질 끌어봐야 어색해지거나 시간낭비가 되기 쉬우니 산뜻하게 털고 일어나려고 했었다. 그러나 상냥하고 매너 좋고 ..
집밥을 먹는 것만큼 한국인들에게 중요한 것도 몇 없을 것이다. 집밥을 먹었다는 건 그냥 집에서 밥공기를 앞에 두고 끼니를 때웠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집에 올 시간에 맞춰 누군가 쌀을 씻어 안치고, 멸치육수를 우리고, 김치를 꺼내 썰고 또 시계를 보며 기다렸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과 환영의 감정이 집밥이 아닐까. 현관을 열면 불이 켜져 있고, 전철역에서 걸어오는 길에 사과라도 몇 알 샀다면 그 봉지를 현관에서 받아줄 사람이 있고, 어쩌면 왁자한 TV 소리와 함께 쏟아질 높은 목소리의 반가운 인사가 집밥이란 두 글자에 스며든 풍경일 것이다. 이렇게 먹는 식사는 반드시 따뜻해야 한다. 밥솥이 흰 김을 뿜어내며 열리면 주걱을 재빨리 들이대어 밥이 서로 엉겨붙지 않도록 뒤적여주고, 마침내 왼손에 밥공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