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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을 먹는 것만큼 한국인들에게 중요한 것도 몇 없을 것이다. 집밥을 먹었다는 건 그냥 집에서 밥공기를 앞에 두고 끼니를 때웠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집에 올 시간에 맞춰 누군가 쌀을 씻어 안치고, 멸치육수를 우리고, 김치를 꺼내 썰고 또 시계를 보며 기다렸다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과 환영의 감정이 집밥이 아닐까. 현관을 열면 불이 켜져 있고, 전철역에서 걸어오는 길에 사과라도 몇 알 샀다면 그 봉지를 현관에서 받아줄 사람이 있고, 어쩌면 왁자한 TV 소리와 함께 쏟아질 높은 목소리의 반가운 인사가 집밥이란 두 글자에 스며든 풍경일 것이다. 이렇게 먹는 식사는 반드시 따뜻해야 한다. 밥솥이 흰 김을 뿜어내며 열리면 주걱을 재빨리 들이대어 밥이 서로 엉겨붙지 않도록 뒤적여주고, 마침내 왼손에 밥공기를 받쳐들고 신중하게 퍼담는 새로 한 밥, 그 뜨끈함이 집밥의 정수다. 전자렌지에 데운 즉석밥은 무효다. 맛이야 사실 정확하게 계량되어 똑같은 질을 유지하는 즉석밥이 좋을지 몰라도, 플라스틱 용기를 숟가락으로 긁는 기분이 영 그렇다. 벅차게 잘 먹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혼자 오래 살아온 사람이 무언가 마음 기댈 곳을 찾을 때 당연히, 쿠쿠 밥솥이나 보험광고 로고와 함께 그려본다는 이런 그림은 그러나 내게 한 번도 어필한 적이 없다. 혼자 사는 내게 집에서 먹는 밥은 어쩌다 큰 맘을 먹어야만 가능한 이벤트이자 노동집약적인 행사다. 멀리 부산에서도 오고 미국에서도 교포들이 구경 온다던 망원시장 근처에 살지만, 여유롭게 장바구니를 들고 나가 어슬렁거리며 꽈배기 튀기는 것 구경하고 주인 따라 나온 강아지의 포실한 목덜미라도 훔쳐보자고 마음 먹는 날엔 왠지 시간이 나지 않는다. 팔 걷어부치고 산뜻하게 "좋았어! 오늘은 꽈리고추 볶음과 감자조림을 해먹자!"라고 외친 후에 그걸 실행하는 영화같은 일은 좀처럼 내게 일어나지 않는다. 아, 그러나 부디 나를 비관적이고 재미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주길. 한동안 열심히 장을 봐서 씩씩하게 해먹었던 적도 있지만 결국 습관이 되지는 못했다는 얘기다. 천가방인 장바구니를 한 팔에 끼고 또 비닐봉지를 주렁주렁 매달고 뙤약볕 아래 버스를 기다리다 결국 택시를 탔는데 코앞 거리를 걸어가지 뭘 택시를 타냐고 퉁박주는 기사 아저씨와 싸우고 나서는 인터넷에서 장을 봐 배송시키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실물을 보고 바로 집어오는 재미만은 못한데다 토마토 하나를 사더라도 후기를 훑어봐야 하는 버릇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리고 머리도 복잡해서 그도 완벽한 대안이 되지는 못했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엄마가 차려주시던 어린 시절의 식탁이 나타나긴 하지만 그 역시 한없이 몽글몽글하고 가슴 따뜻해지는 기억이라기보단 줄지 않는 밥알과 아무리 씹어도 삼켜지지 않던 소고기 힘줄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다. 가족은 아주 작기는 하나 커뮤니티이고 그 안에서 잘 지내는 것도 사회생활의 일종이어서, 집밥을 잘 차려야 하는 쪽의 고충에야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잘 먹어야 하는 쪽도 나름의 기술과 경험이 필요했다. 우리집은 아빠가 좋아하던 미더덕을 동태찌개에 넣어 끓인 것이 저녁상에 자주 올랐고, 나도 여느 아이들처럼 해산물을 싫어했다.  하루종일 가사노동에 시달리며 툭하면 붙어 싸우는 연년생 남매를 키우는 일상이 지긋지긋했던 엄마는, 애써 차린 밥상이 나오면 게걸스레 덤벼들어 먹어주길 원했다. 아빠는 눈을 감고 미더덕을 깨물어 보라며, 툭 터져나오는 국물이야말로 맛있는 거라고 기쁘게 상을 받았고 우리는 최대한 얌전하게 숟가락질을 했다. 어떻게 하면 삶은 생선살을 최대한 퍼오지 않을 수 있을지 정교하게 거리를 재면서. 

내가 7살, 동생이 6살이던 정월대보름의 밤이었다. 어쩌면 그 전날 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마사 스튜어트처럼 하루종일 검은 콩과 차조를 불려 팥을 넣고 밥을 지었다. 분명 어린아이들 먹기 껄끄러울 테니 신경써서 오래 불리고 질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 그래도 먹는 것에 관심 없고 집중력이 약하던 나에게 쌀알 찾아보기 힘든 오곡밥은 그야말로 사약이나 다름 없었다. 남동생도 도리질을 하며 먹지 않겠다고 버텼다. 엄마는 처음에는 회유했지만 결국 성이 나서 오늘 밥공기를 다 비우지 않으면 식탁을 못 떠날 줄 알라고 호령했다. 엄마도 떠나지 않고 신문을 읽으며 우리를 지켜봤다. 콩 하나 콩 둘 세며 먹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결국 꾸역꾸역 입안에 밀어넣었는데, 밥그릇을 비우기가 무섭게 욕지기가 치밀어올라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 것을 모두 게워냈다. 동생과 번갈아 토하고 있는데 열두시를 알리는 시계 전자음이 TV에서 들려왔다. 지금 생각해도 선명하게 끔찍한 정월대보름이었다.

나는 이제 집에서 만든 반찬을 받아다 먹지 않는다. 누구의 노동력도 결국 돌려줘야 하는 빚임을 오래 걸려 깨달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낳은 자식은 없어도, 애지중지하는 개가 생기고 나서는 그날 밤 엄마가 얼마나 좌절하고 분노했을지를 이해한다. 하루종일 인터넷을 뒤지고 사람들에게 물어봐서 이렇게 좋은 사료를, 이렇게 비싼 간식을, 이렇게 구하기 힘든 장난감을 가져왔는데 냄새만 한번 맡고 휭 등 돌리는 개를 볼 때면 관자놀이가 지끈거리게 화가 날 때도 있다. 너 건강하라고, 너 좋으라고 이런 거 사왔는데, 이게 얼마짜린데, 이거 보면 좋아서 펄쩍펄쩍 뛸 개들이 얼마나 많은데 너는 복에 겨워서.

하지만 나는 말도 안 통하는 개를 붙들고 실랑이하느니 조용히 치운다. 주는 것밖에 못 먹는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식사는 매우 중요한 의식이다. 이 하나의 행위만 가지고도 수조원의 시장이 생겨나고 사람들이 친해지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러나 내게 집에서 먹는 밥은 따뜻하고 안전한 감정과 동의어였던 적이 없었고,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생리통으로 앓아누워 문자로 구조요청 한 번 하면 두말없이 진통제를 들고 찾아와 물병과 함께 침대 머리맡에 들어밀어주는 이웃을 만나고 나서, 긴 하루가 끝나고 빅맥세트를 사서 들어와 혼자 감자튀김을 씹으며 잠든 개의 털복숭이 배가 조용히 오르내리는 것을 볼 때에야 나는 따뜻하고 안전하다 느꼈다. 

집밥은 집밥이고, 따뜻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 따뜻함이 먹는 사람과 차리는 사람의 행복을 담보하지도 않는다. 가슴 속에 따뜻함이 차오르는 때를 우리는 다른 곳에서 좀 더 많이 만나야 한다. 앞서가던 친구가 멈춰서서 나를 향해 고갯짓해줄 때, 멀리 사는 누군가 내 생각이 났다며 내 이름이 간판에 붙은 옷가게 사진을 보내줄 때, 차가운 손가락 사이로 더운물이 조용히 파고드는 것 같은 따뜻함을 느낀다. 조용히 온기가 온몸에 퍼져가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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