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서 만난 리트리버 아가. 정오가 지나 해는 높이 떠올랐고 맥주는 빨리 사라졌다. 공기 속에는 열대의 더위와 사람들이 물장구 치는 소리와 웃음 섞인 날카로운 비명이 섞여 떠돌았고 나는 반쯤 취한 채로 우리 자리와 스무 걸음쯤 되는 바를 부지런히 왕복하며 칵테일을 새로 날랐다.수영복을 갈아입고 해변 모래톱으로 걸어들어오자마자 자리 잡을 생각 없이 절벽 저쪽으로 사라졌던 닐과 미셸, 부오빠와 다오가 돌아와서 우리가 잡은 카바나를 살피고는 바의 그늘로 몸을 피했다. 미셸은 남아서 여자 넷이 함께 girl group pic을 찍었다. 아까의 해변 관리인은 부탁하기도 전에 달려와 이 각도 저 각도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고 어마어마하게 큰 사마귀가 어디선가 날아와 카바나 정중앙에 착지하는 바람에 모두가 펄쩍..
내가 켈리와 쓰게 된 트윈베드룸은 거실에서 미닫이문을 열면 들어올 수 있는 네모난, 욕조가 딸린 욕실과 화장실이 딸린 깨끗하고 조용한 방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켈리는 운동하겠다며 호텔 짐에 가고 없었고, 나머지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언니의 결혼식 하루 전 한국에서부터 다같이 자게 되고서는 짧은 잠이나마 깊이 드는 것 같아 눈을 좀 더 붙여보려고 누웠는데, 오래지 않아 아침 먹으러 갈 시간을 정하는, 단체카톡방에서 보내는 메시지들 때문에 폰이 웅웅 울려대서 일어나기로 했다. 아침으로 뷔페를 내놓는 레스토랑은 풀장이 있는 3층에 있었다. 밝은 햇빛 아래서 보는 파통 비치는 어제처럼 서해 앞바다 같은 느낌은 주지 않았으며, 위협적이지 않을 만큼만 푸르고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아침부터 더운 바람이 불어와..
여행은 언니의 결혼식 바로 다음날에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출발해 푸켓에 먼저 도착하게 될 나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짐을 끌고 아직 캐시와 켈리 빼곤 모두가 잠들어 있는 논현동 에어비앤비를 빠져나왔다. 도중에 현금을 뽑느라 atm이 문을 여는 7시까지 시간을 보내야 했고 덕분에 공항버스는 30분이 넘게 월요일 아침 교통체증 안에 갇혀 있었다. 역삼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강남의 오만 데를 다 찍고 나서야 동작쯤에 진입했고 작년 9월 이후로 한번도 조선 밖에 못 나갔던 나는 그야말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빨리 나 공항으로 보내줘. 더는 1분도 못 참아. 한국어로 된 모든 음성신호와 미세먼지 때문에 회색으로 흐려진 하늘, 씨발을 연발하는 20대 초반 남자애들 중 어느 것도 더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