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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켈리와 쓰게 된 트윈베드룸은 거실에서 미닫이문을 열면 들어올 수 있는 네모난, 욕조가 딸린 욕실과 화장실이 딸린 깨끗하고 조용한 방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켈리는 운동하겠다며 호텔 짐에 가고 없었고, 나머지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언니의 결혼식 하루 전 한국에서부터 다같이 자게 되고서는 짧은 잠이나마 깊이 드는 것 같아 눈을 좀 더 붙여보려고 누웠는데, 오래지 않아 아침 먹으러 갈 시간을 정하는, 단체카톡방에서 보내는 메시지들 때문에 폰이 웅웅 울려대서 일어나기로 했다.

아침으로 뷔페를 내놓는 레스토랑은 풀장이 있는 3층에 있었다. 밝은 햇빛 아래서 보는 파통 비치는 어제처럼 서해 앞바다 같은 느낌은 주지 않았으며, 위협적이지 않을 만큼만 푸르고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아침부터 더운 바람이 불어와 모두 짧고 가벼운 옷을 입었다. 하늘은 맑았다. 다들 잠이 덜 깬 부스스한 얼굴로 식당 안을 어슬렁거리며 달걀을 주문하고 샐러드를 담았다. 들뜬 일곱 명 모두가 둘러앉아 먹는 푸켓에서의 첫 아침, 진짜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아침식사를 하는 중에 태국을 잘 아는, 태국인인 여자친구와 뉴욕에서부터 한국까지의, 그리고 푸켓으로의 여정을 함께한 부오빠가 마사지를 받겠느냐고 했다. 원래는 타이 마사지 한 시간에 300밧인데 250밧으로 흥정해 줄 수 있다고. (결국 깎은 50밧은 팁으로 주었다)

부오빠와 그 여자친구인 다오를 빼고는 모두 반색을 했고 아침식사를 마친 후 풀장 바로 옆에 있는 트인 공간인 마사지실에서 여자 네 명이 나란히 엎드렸다. 어디서 왔냐는 마사지사의 질문에 항상 밝고 남의 질문을 소중히 하는 켈리가 “US, but originally Korea.(미국인데 원래는 한국이에요.)” 라 답했고 다른 엎드린 얼굴들 사이에서 “뉴욕!” “서울!”이 중구난방 터져나와서 마사지사들은 아, 미국, 아, 코리아! 오, 뉴욕! 하며 어리둥절해했다.

마사지가 끝나고 대만족한 우리는 태국에서 하루에 한번씩, 아니 두번씩 마사지를 받을 거라며 흥분해서 다음 일정으로 향하는 승합차에 실렸다. 호텔에서 대절해준 차인데, 다오의 아버지가 호텔 오너 중 한 명이라 우리가 특별대접을 받은 건지, 원래 그렇게 써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일정 내내 그 차를 잘 타고 다녔다.(하루이틀은 다른 차를 빌려야 했다)

부오빠와 다오는 이미 끝난 얘기인 것 같은데도 “파라다이스 비치에 가야만 하느냐, 거긴 관광객들이 많다”, “관광객이 많아도 멋진 곳이니까 괜찮다”며 앞자리에 붙어 앉아 티격태격했고 군데군데 태국어를 쓰는 바람에 정확히 문제가 뭔지는 알 수 없을만큼 싸우는 주제가 자주 바뀌었다.(둘이만 일정을 관장하는 바람에 나중에 쿠데타가 나게 된다)

얼마나 갔을까 입구에서 가방을 검사하는 유료 해변에 도착했고, 닐은 결혼식에서도 사용했고 여행 내내 쓰리라고 들떠 있었던 드론을 보안 문제로 뺏기는 바람에 좀 실망하고 말았다. 파라다이스 비치는 폭이 총 1킬로는될까 싶은 작고 아름다운 해변이었고, 모래사장 위에는 선베드들이 즐비했다. 적어도 그 날 우리가 머물렀던 두어시간 중에는 동양인들이 우리밖에 없었을 정도로 온통 유럽 백인들이 차지한 해변이었다. 파스텔톤의 큰 쿠션들을 모아 만든 카바나 비슷한 자리를 발견하고는 여기 앉아 사진 찍자며 우리가 흥분해서 영어로 또 가끔 한국어로 떠드는 걸 일부러 고개 돌려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일단 바로 달려가서(정말 달려갔다) 창 맥주를 한 캔 주문했고, 알콜 알러지가 있는 켈리는 과일 스무디를 주문하며 “작은 우산 좀 꽂아주면 좋겠다” 했다. 큰 소리로, 쉬운 영어를 사용하면서 몸짓까지 같이 하면 대부분의 타이인들 더 이해하기 편해한다는 걸 이미 깨달은 나는 바텐더에게 “이 위에 작은 우산 줄 수 있어요?”라고 잔 위에 뭔가를 꽂는 시늉을 했고 바텐더는 활짝 웃으며 작은 우산에다 예쁜 꽃까지 올려주었다.

이후로도 나와 켈리, 조용하고 언니들 따라다니는 것만으로도 모험의 대부분 일정을 만족해하는 캐시가 함께 앉은 자리에 해변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자주 다가와 자청해 사진을 찍어주고 튜브에 바람도 불어넣어 주었다. 이 때 카바나(비슷한) 자리에 앉은 우리 사진을 보면 내 웃음이 아직 어색하다. 한국에서 너무 안 웃고 혼자 생각만 많이 하며 지내다 보니 울상을 짓지 않고 활짝 웃으려면 일주일은 필요했다. 여행 후반의 사진들을 보면 나는 아주 밝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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