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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에 개봉했던 "Inside Out"이라는 영화가 있다. 내게는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인물의 삶이, 그들의 관계가, 즉 인류가 소통하는 방식과 그 결과가 감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준 작품이었다.
외부에서
1. 자극이 들어오면
2. 그것을 감정으로 인지하고
3. 감정을 분류하고
4. 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결정하는 (무시할 것인지, 밖으로 보일 것인지, 감정을 유발한 사람과 대화할 것인지, 소리지를 것인지, 울 것인지...)
이 과정에서 감정을 "출력"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언어이다. 언어는 남에게 내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확인시키는 데도 쓰인다.
예를 들어 "외롭다(feeling alone)"는 감정을 느끼는 아이가 그 감정을 발견하고 이름을 붙여주지 못한 채, 즉 "don't feel belong(소속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feel unwelcome(환영받지 못한다고 느낀다)"를 감지하지 못하고 그저 "다른 아이들을 만났더니 짜증이 나고 재미가 없다", 심지어 한국어가 곧잘 손쉽게(그리고 무책임하게) 처리하는 방식대로 "애들이 나를 무시해/싫어해"가 되면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몇 걸음이나 더 멀어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미 외로움(feeling alone)을 감지할 수 있는 성인의 경우에도, "외로움(being alone)"의 원인은 오직 애인이나 파트너가 없어서이며 연애를 하거나 결혼하면 모든 외로움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문화권에 사는 경우에는
"고립된isolated"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invisible" "나의 (소외된)이야기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unheard" "집단에서 따돌림받고 배척받은ostracized" "의지할 데가 없는, 믿을 사람이 없는 alone" "사랑받지 못하는 unloved"
등으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분류하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을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태도 때문에 감정이 언어의 의식 표면으로 떠오르지 못했고 사람들은 감정을 세분화해 꺼내거나 정리해서 묶지 못하게 되고, 이것이 다시 감정에 대해 잘 말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만들어 냈을 수도 있다.
한국어가 여기에 능숙하지 못하다면, 상대적으로 잘 해내는 언어를 빌리면 된다. 다행히도 우리가 정규교육과정에서 수년을 배우는, 제 2 언어 중 가장 중요한 영어이다.
아래부터는 감정 형용사 part 1에 이어, 내 인생의 독을 알아보기 위한 준비 단계인 부정적인 감정 형용사들의 여러 층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한번쯤은 들어본 형용사이고, 번역했을 때 모르는 단어도 아닌데 새로 배워서 다를 게 뭐냐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부터 바이링구얼로서, 한국어가 제 1언어이지만 영어도 내 언어로서 구사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의 감정을 탐구하는 도구로 영어만을 사용할 것이다.
Upset이 반드시 분노, 두려움, 슬픔 중의 하나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인생에 독이 되는 관계가 불러오는 감정들은 아주 여러 가지의 종류와 층을 가지고 있으며 지속도와 효과도 다르다. 이름이 같다고 해서 모두에게 같은 느낌인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한도에서 도움이 될 만한 감정의 shade를, 큰 감정의 덩어리에서 따라가기 쉽도록 적어본다.
* confused
스스로에게 How am I feeling now? Why am I feeling upset?이라 질문했을 때의 답이 분노도, 두려움도, 슬픔도 아니라면 가장 흔한 종류의 감정으로 confused(혼란)이 있다.
먼저 글의 서두에 적었듯이, 겉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상황이나 관계에서 내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의심해볼 만한 가장 유력한 감정이다.
한국어로 "찜찜하다" 혹은 "쌔하다"는 느낌들이 여기에 들어맞는 경우가 있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이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거나, 상대방이 지속적인 혼합된 신호(mixed signals)를 보내거나(직장에서는 공적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갑자기 밤 늦게 연락해 친근하게 군다거나 하는 일의 반복), 누군가와의 소통에 있어 룰이라고 믿었던 것이 자꾸 바뀌거나 하는 등의 일이 있을 경우 "You are confused."
* vulnerable
취약한, 연약한으로 번역되는데, 감정에 사용할 때는 외부의 자극이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정 상태를 주로 일컫는다.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정도가 강해지고 지속도되는 속도도 길어진다. 말 그대로 감정의 보호막이 한꺼풀 벗겨진 듯한 느낌이 든다.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직장동료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가 못내 신경이 쓰이는데 그게 자책이나 죄책감 혹은 미움으로 이어진다거나, 사소한 일에 자꾸 화가 난다거나, 딱히 나를 겨냥해 한 말이 아닌데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거나 하는 감정이 지속되면 나는 "vulnerable"한 상태이다.
* shame
feeling insecure/vulnerable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흔히 말하는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에 크게 기여한다. 체온이 급히 상승하거나 볼이 화끈하고 눈앞이 어질하기까지 한 신체 반응이 있을 수 있어 anger(분노)와 혼동할 수 있다. 실제로 고개를 잘 못 들게 되거나 신체 가용 범위가 줄어드는 등의 알기 쉬운 행동 변화가 일어난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feeling shame을 느끼고 있다면
1. 나는 아주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거나
2. 누군가 나에게 잘못된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일 수 있다.
* guilty
나는 "feeling sorry(미안한, 안됐다고 느끼는)"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는 상태이다. shame은 "사회적인 감정"이라 불릴만큼 외부의 불특정한 시선이나 상상된 판단 때문에 괴로운 반면, guilty는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혹은 잘못했다고 믿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다.
* anxious
한국어로 "불안한" 것이다. 그대로라고 생각하면 된다.
* feeling overwhelmed
stressed/anxiety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흔히 업무가 과중하거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거나 남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요청하지 않은) 사건이나 비밀, 과업들을 떠안았을 때 느낀다. overwhelmed이라는 단어에서 느낄 수 있듯이, 말 그대로 나는 압도당하고, 질리고, 깔린 것이다.
* frustrated
"좌절한"으로 다소 묵직하게 번역되는 한국어와는 달리, "어제 산 청소기가 작동이 잘 안되는데 정말 frustrating하다"는 식으로 가볍게 쓰이기도 한다. 다만 진지한 맥락에서는 "이것도 저것도 다 해보았는데 안 되었을 때", 일의 진척이 지속적으로 가로막힌 것을 호소할 때의 감정을 묘사한다. 한국어의 "좌절"은 "불합격"이나 "실패"와 함께 묶이는 느낌이 있지만 frustrated은 아직 시도의 연장선에 머물러 있기는 하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미 일이 실패로 끝나서 "매우 기가 꺾이고 낙담했다" 정도의 느낌은 "feel defeated"이 더 어울린다.
* depressed
슬픔, 불행, 불만족, 비참과는 또다른 의학적인 정의를 가지는 단어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총합일 수도 있다. 최근에는 10대를 중심으로 가볍게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어에서처럼 "나 치킨 못 먹어서 우울해" 정도로 쓸 수는 없다. 오늘만, 혹은 우울증까지는 아니고 요즘 기분이 언짢은 것은 "feeling down"이면 충분하다.
여러 정의가 있지만 영어에서의 depressed가 공통적으로 지니는 것은 "지속성이 있고 일반적인 감정의 상태"이다. 본인의 상태가 이러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