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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rival(콘택트), 시간과 언어, 그리고 초월에 관한 이야기

 

- 스포일러 매우 많습니다


"I remember every moment of your life."

영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시간은 이상한 것이라서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기억된다고. 사람들은 시간에, 순서에 너무 집착한다고.

 

나도 누군가의 일생을 기억했던 적이 있다. 누군가가 친구의 앞에 신문지로 싸서 버리고 아주 작은 푸들이었다. 13년을 함께 살고 나서 어느날 새벽에 앞에서 애가 숨지는 것을 보았고, 아주 오랫동안 죽음을 보았던 방에서 잠들지 못해 지인들의 집을 전전했다. 자다가도 문득 이제는 아주 없다는 생각이 떠올라 숨이 막혀서 깨곤 했다.

있었다가 없어진다는 사이에, 내가 이해하기로는, 시간밖에는 없었다. 생명이 생겼다 꺼지는 원리를 머리로는 이해해도 수긍하고 잊어버릴 수는 없었다. 생의 모든 순간을 나는 어제처럼 기억하는데, 요전날에는 있다가 갑자기 없어지다니, 누군가에게 얘기를 하려면 거짓말인 것처럼. 그냥 없어지고 말다니.

영화에서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우며 미래를 기억하기 시작한다. 그의 미래는 가졌다 잃어버리고 , 지극히 사랑하는, 생의 중간에 생겨났다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어린 딸을 중심으로 뒤죽박죽 다시 떠올려진다.

 그래서 마침내 서로 연결됨(we need to be talking to each other) 포기하고각국이 전쟁태세에 돌입하려 , 딸이 속삭이던 엄마, 일어나 소리를 듣고 루이스는 미래에 자신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까지 모두 기억해낸다. 그리고 딸을 얻었다 잃은 시간을 (다시) 살더라도 이미 아는 길을 가겠다고 결정한다.

 그래서 영화는 초월에 관한 이야기다. 시작과 끝이 따로 없이 원형으로 닫히는 문자와 순서대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같은 딸의 이름(Hannah), 영화가 시작되고 끝날 때의, 마치 이런 저런 우주적 스케일의 사건들은 의미가 없다는 듯한, 같은 장소에서 담담한 어투로 보내는 딸에게의 메시지.

호피(Hopi) 인디언의 언어에서는 시간을 순환하는 것으로 본다고 한다. 어제가 지나고 오는 오늘은 완전히 다른 날이 아니라 같은 날의 순환이다. 영어에서는 시간을 분초 단위로 나눠 개별적인 개념으로 만들어서 쓰거나 버릴 있는 것으로 보지만 호피 인디언의 시간은 분절되지 않아서 다만 왔다가 지나갔다 다시 돌아오는 거대한 고리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언어를 익히면, 한국어로 존대어를 상대방의 나이를 묻고 싶어지거나 말을 놓을까라고 합의를 보게 되는 것처럼, 영어를 시제를 신중히 고르거나 지칭하는 이의 성별을 의식하게 되는 것처럼, 직선으로 흐르는 시간을 둥글게 구부려서 너를 다시 만나게 될까?

 

있던 네가 갑자기 사라지는 아니고, 마치 시간이 한바퀴 돌아 다시 오는 것처럼 너를 만날 있을까? 너의 일생을 내가 기억하듯이, 지금 여기 없다고 네가 내게서 사라진 것이 아니듯이.

 

I remember every moment of you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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