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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못하는 게 아닌데 영어회화는 못한다는 학생들을 자주 만난다. 토익을 비롯한 영어공인능력시험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았고(요즘 영어시험 성적이 다들 좋아서 토익 700점 정도는 잘 본 것도 아니라는 자조 섞인 한탄을 대학생들에게서 듣는데, 사실 ETS에서 제시하는 성적 기준표를 보면 토익 600점을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은 영어권 국가에서 일할 수 있는 정도인 중상급의 언어실력을 가진 것이라 평가하고 있다. 결코 영어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태가 아니다.) 수준 높은 영단어도 많이 아는데 막상 외국인을 만나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주말에 뭐 했는지, 이번주에 뭐 했는지 말해보라고 독촉했을 때는 이런 항의를 듣기도 했다. "나는 한국어로도 내 얘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아차 싶었다. 맞다. 대화다운 대화는 여러 가지의 사교적 기술과 경험을 모두 동원해야 비로소 가능한, 때로는 다른 인격을 덮어써야 일어나는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국어로 이루어지는 스토리텔링과 영어로 이루어지는 그것이 이야기의 전개나 구조 면에서 매우 다르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어쨌든 어느 언어로든 내 얘기를 자신있게, 여유있게 해 본 경험이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외국어를 한다고 내가 하루아침에 다른 인간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친척들에게서 결혼은 언제 하냐, 둘째는 언제 볼 거냐, 새로 이사간 집은 몇 평이며 대출은 얼마나 받았느냐는 질문이 쏟아질 때 어떻게 도망갈까를 주로 고민하던 내가 "요즘 좋은 홍차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 경험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즐거운지"를 갑자기 술술, 그것도 영어로 설명할 수는 없다. 아무도 내게 사소한 질문을 하지 않았고, 질문이 없는 곳에 답이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TMI(too much information, 지나친 정보)는 원래 딱히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나 역겨움을 자아내는 사건의 세부사항을 이르는 경우에 주로 쓰였다. 원 대화의 맥락을 탈주해 오늘 아침 내가 화장실을 얼마나 잘 갔는가를 공유하려 든다거나 신혼여행에서 보낸 뜨거운 밤의 디테일을 묘사하려 드는 것이 티엠아이였다. 그러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개인의 일상을 공유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남이 묻지 않은 내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TMI가 "나의 안부"를 커버하기 시작하며 한국어에서 사용되는 빈도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새로운 유행어 중 하나가 되었을 정도로. 

신청양식 아래에 자신의 티엠아이를 남겨 달라거나,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티엠아이 시간을 갖겠다는 식으로 어디에나 쓰이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내 얘기를 듣고 싶어할지, 지루해하진 않을지, 뭘 얼마나 말해야 하는지를 놓고 오래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사람들에게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말머리로 쓰이는 것 같기도 하다. 

몸무게, 키, 집 평수, 나이 등 숫자를 포함한 정보 외의 내 이야기를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면 그것에 약간의 미안함을 담아 "지나친 정보"라고 부르며 편안해하게 된 것일까. 자기 얘기를 할 때마다 매번 티엠아이라며 양해를 구하는 사람도 보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포함하는 작은 정보의 조각들은 티엠아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인간 소통의 일부인데.

처음 영어권 친구들을 사귀고 나서 그들의 시시콜콜한 질문(너는 따뜻한 나라가 좋아, 추운 나라가 좋아? 무인도에 딱 세가지 물건만 가져갈 수 있다면 뭘 가져갈래? 이제까지 먹어본 중 제일 이상한 음식은 뭐야?)에 처음에는 당황했다가, 나중에는 대화의 희열에 빠져들곤 했다. 내가 여태 어디에 가고 뭘 먹어봤더라? 내가 아는 제일 웃긴 얘기가 뭐더라? 내가 왜 라스 베가스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더라? 하는, 스스로를 다시 탐색하는 즐거움.

세상은 개별적인 사건과 단단한 물질로 가득하고 무엇이 있는지 없는지만이 중요하며, 이야기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세계의 맥락에 균열을 내고 있었다. 나의 기억이 말로 어떻게 풀려나오는지 관찰하는 일, 이야기를 시작할 때 가득했던 슬픔과 불신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 조용히 다른 감정으로 바뀌는 일, 스스로의 서사를 편집하고 컨트롤하는 즐거움. 

오래된 영화에서 봤던, 조용한 바에 들어와 다짜고짜 위스키 온더락을 주문하고 옆에 앉은 사람에게 자기 신상을 미주알고주알 설명하는 사람이 왜 그랬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말해도 괜찮다고 느끼는 것, 안전하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는 곳에서 나는 나를 조금씩 다시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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