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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0일 오후 4시경인 지금 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내일도 비가 올지 궁금하다면 한국어는 어떻게 질문할까?


"내일도 비 와?"

혹은 


"내일 비가 올까?"


라고 묻지 "Will it rain tomorrow?(내일 비가 올 것입니까?)" 라 묻지 않는다. 이렇듯 한국어는 미래시제가 존재하긴 하지만 현재시제가 미래시제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언어이기도 하다.

UCLA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Keith Chen은 "언어가 경제적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76개 국가를 조사하였고 그 결과 영어처럼 "미래 시제가 엄격하게 구분되는" 언어와 "문법상 현재와 미래에 차이가 없는" 언어의 구사자 사이에 현격한 저축율의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futured language" 즉 미래시제를 가진 언어(영어, 불어, 그리스어 등)의 구사자들은 저축율이 낮고, "futureless language", 미래시제를 가지지 않은 언어(북경어, 일본어, 핀란드어 등)의 구사자들은 저축율이 높았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남한의 저축 순위는? 

76개 국가 중 저축율이 2위인 나라였다. 


Chen은 여기에 대해 "미래시제를 현재와 엄격히 구분해 쓸 경우 현재와 미래가 멀리 떨어진 것으로 보고 현재시제가 미래시제를 대체하는 언어는 미래가 아주 가까이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 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https://www.ted.com/talks/keith_chen_could_your_language_affect_your_ability_to_save_money 


그렇다면 정말 한국어 사용자들은 미래를 더 가깝게 느끼는 것일까? 현재를 희생하여 미래의 가치를 추구할 정도로 현재와 미래가 별 차이 없는 것이라고 무의식중에 언어로부터 암시를 받는 것일까? 


Chen의 가설이 아직 온전히 사실로 증명된 것은 아니니 알 길은 없다. 다만 북경어와 영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바이링구얼로서 두 언어의 차이를 인지하고 이러한 아이디어를 낸 Chen처럼,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구사하게 된다면 여기에 내 나름의 대답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어-영어 바이링구얼로서의 나의 답은, "한국어와 영어에서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으며 이것은 내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이다.


사람들이 하는 선택의 차이가 정말 문법의 차이 때문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영어를 사용할 때 시제를 신중하게 고르는 것은 "시간을 분절해서 인식하는 수퍼파워"를 발휘하는 과정이라고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한국어가 위계와 "분위기"를 읽는 수퍼파워를 가졌다면, 영어는 시간의 흐름을 항상 인지하면서 거기 점을 찍고 선을 그어 구획을 만들 수 있는 수퍼파워를 가졌다.


"Spring has come!"을 직역할 방법이 없는 것, 혹은 "Have you been crying?"을 추가적인 정보 없이는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이 예이다.


"어디 갔었어? 여태 기다렸잖아."라는 한국어를 뉘앙스를 살려 영어로 하면 "Where have you been? I've been waiting for you."가 되는 것이 또다른 예이다. 

예를 들자면 끝도 없을 정도로 한국어와 영어가 시간을 다루는 방법은 서로 다르다.


그래서 한국어 사용자가 시제를 많이 가진 영어로 건너갔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현재에 머무르는 힘"이라고 본다. 실체 없는 불안에 자주 시달리거나 현재의 문제가 미래의 문제로 쉽게 비약하려고 할 때 나는 영어로 스위치한다. 

"It will be OK. Things are going to be alright."


"I'll figure it out. I always have."


시간을 여럿으로 나누는 언어를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은 내게 축복이었다. (다만 내가 저축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영어에 그 잘못을 떠넘기곤 한다). 나는 현재와 미래를 흐릿하게 떠도는 생각들을 붙잡아 제자리를 찾아줄 수 있었다. 현재에 확고하게 머물도록 결정할 수 있었다.


Chen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미래시제가 없는 언어권의 사람들"이라지만 한국어로만 살아온 나는 그 반대를 원했다. 그리고 영어를 가진 지금, 시제의 힘이 나를 덜 불안하게, 덜 슬프게, 덜 초조하게 만들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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