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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오랜, 좋지 않은 버릇이 있다. 불안하거나 초조할 때 손톱 주변 피부를 뜯어내는 것, 그리고 일명 "돼지털"이라 불리는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뽑는 것. 둘 다 OCD(obsessive-compulsive disorder, 한국어 번역명 강박장애) 를 겪는 사람들에게 흔히 발견되는 증상이며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한국어에서 "-장애" 라든가 "-증(disorder)"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와 거부감. 그에 대한 사회의 인식... 등은 제쳐놓고 이야기를 진행하려고 한다. 영어에서도 반가운 글자들은 아니다.
한국어로 "손끝을 뜯는다" 혹은 "손 뜯기"를 검색해보려고 하면 "손 뜯는 버릇 고치기"가 자동완성된다.(구글 기준, 네이버로 검색하면 더 심란한 결과들이 뜬다. 그러나 언어를 달리해 검색하는 것과 검색엔진을 달리해 검색하는 것 혹은 그 교차의 결과는 또 다른 이야기이므로 여기까지만)
영어로 "손끝을 뜯는다" 를 검색해 보려고 하면 "I pick my fingers"로 시작해 "나는 피가 날 때까지 내 손가락을 뜯는다" 등이 자동완성으로 뜬다.
그리고 그 두 검색 결과 페이지의 가장 큰 차이는 이것이다.
한국어 검색 결과는 "어떻게 하면 이 버릇을 고칠 수 있을까" 이외에는 다른 주제가 거의 없으며, 이것은 "비위생적이고, 지금 당장 고치지 않으면 나중에 이러한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부모 중 엄마에게 그 큰 책임이 있다" 라는 메시지를 반복 전달한다.
영어 검색 결과는 우선 가장 상단에 "dermatillomania"라는, 증상의 "이름"이 나오며 이것이 OCD의 전조인지에 대한 질문과 답이 위치하고 있다.
1. 즉 이 현상에는 이름이 존재하며 네가 유별나고 괴물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하고(세상에 나 혼자만 이렇거나 7명 정도만 있다면 이름을 가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2. "왜 나는 손가락을 뜯을까? dermatillomania의 원인과 증상"이라고만 명시한다. 그러므로 "안좋은, 비위생적인, 당장 고쳐야 하는" 등의 가치 판단 없이 스스로가 기존 사례와 얼마나 맞아 떨어지는지, 그래서 궁극적으로 무엇이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원인으로 무엇이 지목될 수 있으며 지금 제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등의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관련연구를 참고로 하여, 죄책감을 느끼거나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고(그러므로 다시 도피하지 않고) 증상을 자가진단해볼 기회를 제공하며
- 물론 영어검색 역시 세부항목으로 들어가면 이 증상에 대한 부정적인 분석이 등장한다. 그러나 도입부에서 가치판단이 제시되는 일은 드물다.
3. 이 행동장애와 연결된 다른 문제(더 크거나 작은, 혹은 본질적인... 불안감을 느끼는 데에 있어 다른 사람들보다 취약하다든지, 특정 부분에 있어 강박증 성향이 있다든지)의 가능성을 추가 제시하여 진짜 원인을 추적할 수 있게 한다.
이외에도 영어권에 흔한 AA 모임(알콜 중독자들의 치료 모임)처럼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들끼리 포럼이나 정기적으로 만나는 그룹을 찾기도 어렵지 않다. 그저 "말하기 남부끄럽긴 하나 병원을 다니기까진 할 일은 아닌 것 같고 괴롭긴 한데 어디 말할 데는 없는" 식으로 한국어의 의식 저편에서 고통받고 있던 이 "증상"이, 영어권에서는 구글링만 하면 동지가 100만명 나타나는 식이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이 어떻게 나아졌는지 팁을 공유하고 기꺼이 가능한 도움을 제공하며, 가끔 신문 등의 미디어에 투고를 하기도 하고, 스스로가 추측하는 원인에 대해 스스럼없이 밝히기도 한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훌륭하며, 또 어떤 면에서 이상하다. 100% "정상"인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어가 오염된 방식은 지나친 위계에의 집착과 더불어 미사여구처럼 끼어드는 "가치판단"인데, 이것이 나의 이상함을 나쁜 것으로 만든다. 죄책감과 불안을 증폭시켜 더 나아지지 못하게 한다. 다른 한국어 사용자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나에게 모국어는 항상 그런 면이 있었다.
그래서 여기 공감하는 분들이라면,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있었다면, 그리고 앞으로 생겨나는 의문들 역시,
1. 언어
2. 질문의 종류
이 두 가지를 바꿔서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1.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내가 한국어 외에 구사하는 언어는 영어뿐이니)
2. "나의 손 뜯기를 어떻게 고칠까" 가 아니라 "나는 손을 뜯는다" 혹은 "왜 나는 손을 뜯을까"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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