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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하는 영어"라는 제목을 선택하면서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치유"라는 단어가 어떻게 해석될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설명을 한번에 하기보다, 뉴요커 지(The New Yorker)에 소개되었던 에세이를 번역함으로써 내가 이제부터 소개하려는 영어 배우기의 운을 띄워볼까 한다.
My Struggle with American Small talk
- Karan Mahajan
http://www.newyorker.com/culture/culture-desk/my-struggle-with-american-small-talk
독립기념일을 맞아 우리는 작가들에게 미국만이 가진 무언가를 포착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인믈, 사물, 혹은 경험에 대해 묘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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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돼가요?(How's it going?)" 나는 바리스타에게 물었다. "오늘은 어때요?(How's your day been?")
"아, 많이 바쁘진 않아요. 당신은 뭐해요?(What are you up to?)"
"별거 안해요. 그냥 독서."
이것이, 내가 터득한 미국 생활의 핵심적인 의례 중 하나이다. 내가 이걸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데 10년이나 걸렸다.
나는 2001년에 미국으로 이주해 와서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에 내가 가게 주인들, 그리고 찻집 직원들과 교류했던 경험이라곤 인도의 것밖에는 없었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델리에서 상행위는 무뚝뚝하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오늘 하루는 어떠냐고 묻지 않는다. 미소조차 짓지 않을 것이다. 이게 이상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ㅡ 그냥 그게 인도에서 거래하는 방식이다. 화폐의 교환행위가 사람들이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이유다. 고객은 음식이 너무 차다고 항의하기 전에 망설이지 않는다. 쌍방 모두 서로가 자기를 속일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항상 경계하고 있다. 팁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마하잔, 너 웨이터한테 너무 무례하잖아!" 오래 전 내가 웨스트 빌리지에서 음식 주문하는 걸 보더니 미국인 친구인 톰이 웃으며 말했다. 스스로를 온화하고 친절한 사람이라 생각하던 나는 놀라서 맞섰다. "너는 아부 떠는 거라고!" 톰은 항상 서버들에게 어떻게 지내냐고 묻거나 셔츠를 칭찬하거나 메뉴에서 농담할 거리를 찾아냈다. 당시의 나에게 이것은 지적인 기만으로 보였다. 정말 서버들이 뭘 입고 있는지 관심이 있는 걸까? 서빙하는 주제에 자기보다 좋은 옷을 입었다고 언짢음을 표현하는 건 아니었을까? 만약 이런 식으로 모든 사람을 재보고 있다면 그런 공치사가 무슨 의미일까?
미국에서의 삶은 양방이 서로에게 호감이 있지만 각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 기반해 있다. 이것이 스몰 토크의 나라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다정하게, 기쁘게 반기지만 서로의 개인적 배경에 대해 기본적인 질문을 하기까지는 몇 년이고 걸렸을지 모른다. 인도에서는 정반대다. 내가 인도로 오고 가는 비행기에서 옆에 앉았던 최소 세 명의 인도 사람들이 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작가로 버는 돈이 얼마인지 물었고 대답을 듣자 대놓고 실망하며 고개를 돌렸다.
동양에는 우정 없는 친밀감(끈적함)이 있고 서양에는 친밀감 없는 우정이 있다고들 한다.
미국에 살면서 오랫동안 나는 커피를 주문할 차례가 되면 공포에 떨곤 했다. 무대에 올라가는 것 같았다. 내 영어 억양은 인도식이었고 사람들은 내 말을 못 알아들었으며 그러면 나는 창피해져서 우물거렸다. 나는 확신이 없다는 듯한 분위기를 온몸으로 풍겼고 그걸 감지해낸 어떤 바리스타들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러면 내 안의 열등감이 "인종차별하네!"라고 외치곤 했다.
이 광막한 스몰톡 지대에서 세월을 보내며 나는 왜 미국인들이 상업행위에 있어 친절함(친구같음)을 그토록 중시하는지 궁금하게 여겼다. 현금을 건네는 행위가 미국 자본주의와 미국적 삶의 성스러운 의식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뭔가 사지 않는 날에는 나는 이상하게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돈 쓰는 일은 내 사회적 상호작용의 주된 형태인 것이다. 혼자 살거나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사는 수백만의 다른 미국인들이 그렇듯이.
온전히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분석의 대상이기 마련이다. 브루클린과 텍사스 주 오스틴에 살면서 나는 커피숍들을 내 연습장으로 삼았다. 같은 사람에게 매일 커피를 주문하는 것은 맥락을 낳았고 연습을 가능케 했다. 사람들은 더이상 내 이름을 "케빈"이나 "카르멘"으로 듣지 않았다. 여전히 "포장이요" 와 "먹고 갈게요" 는 헷갈려하긴 했지만. 나는 동화되기 시작했다. 대화는 기분 좋았고 더이상 연극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계산대에서 스몰톡을 할 때면 나는 여전히 인도에서 1990년대에 인기 있었던 소설인 "괴팍한 미국인들"이라는 소설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이 책의 도입부에서, 인도의 한 헤어 오일 기업을 물려받을 고팔은 미국으로 유학을 온다. JFK 공항에 도착해 세관 직원이 "어떻게 돼가요?(How's it going?)"이라 물었을 때, 고팔은 그가 아는 유일한 방식으로 대답한다:
나는 그에게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모든 문제거리와 또 갖고 있는 희망들을 전부, 그리고 솔직하게 얘기했어. 이기적인 미국인이 우리 지역의 헤어 오일 가격이 떨어지는 문제에 대해 신경이나 쓸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형제여, 그는 10분 동안 내게 눈을 맞추고 아주 조용히 들어주고 있었어. 그리고 우리는 땅콩에 대한 다정한 얘기를 나누었고 그는 나에게 가도 좋다고 하더군.
- 카란 마하잔(Karan Mahajan), the author of "The Association of Small Bom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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