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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영어는 증명해 보여야 할 무엇인가이다. 자격증이고, 기술이며, 아는 사람들 앞에서는 단 한 마디도 꺼내기가 힘든데 갑자기 아주 쉬운 단어조차 내가 맞게 사용하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이다. 내 발음이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처럼 들리는지, 평소 내 인상에 비해 너무 콩글리쉬인지 알 수가 없다. 전혀 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하나의 언어가 집단적 트라우마이자 동시에 지배적 문화를 받아들이는 채널로 기능하는 애증의 대상인 것, "잘하는"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인가 싶지만 또 "그래서 얼마나 잘하는데"로 저울질 당하는, 대단히 동아시아적인 현상.
한국에서 영어의 존재와 함께 산다는 것.
여기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다.
앞선 글에서 묘사된 미국의 스몰톡이 세계의 다른 문화에서의 "스몰톡 없음"에 비해 월등하거나 선하다는 것이 아니다. 영어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괴로워해온 사람들에게, 사실은 영어를 하는 스스로가 행복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차근차근 알려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중언어를 구사하게 되면서 바로 그 사실이 나를 살렸으므로. 영어를 잘하고, 어느 정도 하고, 못하고 하는 구분을 떠나 "영어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은, 한국어의 어떤 면에 시달렸던 나를 구하는 일이기도 했다. 나의 업이 되기도 했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 중 하나였다.
그래서 주제를 나누어, 때로는 일화로, 때로는 문법을 풀어서, 혹은 "회화" 위주가 될 수도 있는... 완결된 하나의 시리즈를, 시작했으므로 맺음이 있도록, 반드시 그렇게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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