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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북미인이 영어학원 광고에 나와 

"'Hello, how are you today?'"

"'I'm fine, thank you, and you?' No, no, no, no. Come on, guys. Let's get serious."

자막: I'm fine, thank you, and you, 라구요? 

그런거 말구요... 우리 진짜 이야기를 해보자구요. 


로 시작하는 1분짜리 연설을 하는 유튜브 비디오가 화제가 되었다. 몇 번이고 돌려보았는데, 

1.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2. 한국어와 영어(특히 북미식)의 담화 스타일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어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메시지가 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1. 우선 화자가 제안하는 "진짜 영어" 혹은 "진짜 이야기"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오기만 하지 소통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는 "죽은 영어"의 반대급부라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화장실을 물어봤을 때 단어만이라고 해도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은 해당 담화의 목적을 다한 것으로서 세련도는 떨어질 수 있겠지만 ESL 선생이 "no no no"하며 인덱스 핑거를 흔들 일이 아니다. 영상 광고이고 주목을 끌어야 하니까 좀 더 도발적인 제스처가 필요했겠지만 선생 가르치는 곳에서는 그렇게 심리적으로 학습자를 위축시켜서는 안된다고 큰 감점을 받았을 것이다. 



2. 영상의 댓글을 살펴보면 "깊은 대화를 원하면 한국에 사는 네가 한국어를 배워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데, 그의 직업적인 측면에서도 궁극적으로는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에서 언어가 사람간 관계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혹은 관계 안에서 언어가 어떻게 재배치되는지를 느꼈다면 저만큼 확신있게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하자"는 톤으로 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영상에서 화자가 제안하는 이상적인 담화 상황은 사실 "미국식 스몰톡"이다. 안 친한 사람들끼리 거리를 확인하면서 하는. 그런데 한국에는 우선 스몰톡 문화가 존재하질 않는다. 애초에 "안녕하세요" 후에 "요즘 어떠세요"를 굳이 물어보지 않기 때문에 내러티브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그다지 가깝지 않은 사이에 "주말에 뭐 했어?" 라고 묻는다 해도(쌍방이 충분히 조심스럽다면 이마저도 아니고 "주말 잘 보냈어?" 나 "잘 쉬었어?"가 되면서 "응"의 대답을 듣고 그대로 대화 종료이기가 쉽다)

"I went on a camping trip in Upstate New York with my boyfriend.(업스테이트 뉴욕에 남자친구랑 캠핑 다녀왔어.)" 정도(장소와 동반자 혹은 기간 등)의 추가정보는 주는 영어에 비해

"캠핑 갔다왔어."

가 되지 "남자친구랑 지리산으로 캠핑 다녀왔어." 는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한 응답도 "Oh really? Sounds fun! Wasn't it still cold up there?(오 진짜? 재밌었겠다! 거긴 아직 춥지 않디?)"로 팔로업 질문이 따라오는 영어 맥락에 비해 한국어는

"어디로? 누구랑? 얼마나? 아직 춥진 않았고?"를 묻기보다는 

"좋았겠다." "재미있었겠네." 정도로 받고 맺으면 예의바른 한국식 스몰톡이다.


아예 한국어에 없는 것인 데다가, 굳이 묻지 않으면 답하지 않는 사적인 정보들이고, 줄줄이 말했다가는 상대방의 이상한 시선을 받을지도 모른다. 용기를 내서 영어로 "내가 주말에 무엇을 했다" 혹은 "내가 이렇게 지내고 있다"고 말하기 시작해도 금세 어디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적당한지, 이 정보에 관심은 있을지 급격하게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문법과 발음에도 신경써야 한다.


(한국에 살면서 스몰톡이 그리웠을 것이다. 그 영상의 미국인이 대본까지 쓴 것이거나, 혹은 다른 북미인이 썼다면 틀림없이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어떤 종류의 외로움을 견디면서까지 필요한 말 외에는 않고 사는지, 그리고 영어를 배우면서 "영어에서는 말해도 된다고 하니까" 모처럼 엄청난 용기를 내어 fine thank you and you 에서 더 나아가 봤을 때 무엇을 마주쳤는지는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ESL에 바이링구얼 교육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상을 보면서 기가 찼을 한국어 사용자이자 영어 학습자께는 북미식 스몰톡에 대처할 때 "물어봤으니까 대답한다"는 단순한 사고, 그리고 "듣고 싶어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져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영어의 how are you는 열린 질문이다. 애초에 Yes or no 로 답하라고 하지 않았으므로, 스쳐 지나가며 정말 수사적으로 물어본 것이 아니라면 용기를 내어 내 할 말을 하면 된다.


I'm not doing fine. I made a terrible mistake again. Do you want to hear about it?

나 잘 지내지 못해. 엄청난 실수를 했어. 들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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