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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나서 자라면서 집에서, 학교에서, 혹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 말을 예쁘게 하라는 요구를 종종 들어왔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언짢아지지만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말을 예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어는 말을 어떻게 맺느냐가 중요한 언어이므로 "-해 주세요."를 "해주실 수 있어요?" 정도로 바꾸라는 얘기일까? 즉 좀 더 정중한 표현을 써 달라는 것일까? 아니면 말 그대로 보기에 예쁘도록 무표정보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라는 것일까? 예쁜 것은 시각에 달린 일인데 언어신호를 어떻게 예쁘게 보낸다는 걸까? 

말을 예쁘게 하라는 요구는 주로 직위가 낮은 사람, 여성, 어린이,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직종을 향한다. 국회의원, 대학교수, 혹은 중년 남성, 한국에 체류중인 백인에게 말 예쁘게 하라고 주문했다는 경우는 들어본 일이 없다. 

트위터에서 "예쁘게 말하라는 주문"에 대해 얘기를 꺼냈더니 누군가가 신촌 한복판에서 싸우는 커플을 목격한 일을 제보한 적도 있다. 무슨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쟁하던 커플 중 남자가 여자에게 "예쁘게 말해. 예쁘게 말하라고."만 반복하고 있었고 여자는 말을 시작할 때마다 예쁘게 말하라는 주문에 가로막혀 더는 입을 열 수 없이 당황해하고 있었다고. 

말을 시각적으로 예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설령 그럴 수 있다 해도 예쁘다는 것은 주관적인 미추의 기준에서 시작하는 형용사이고, 단정하다거나 깨끗하다는 판단과 비교해 봐도 어디가 어때야 예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말문이 막히게 된다. 내가 하는 말의 형식이 무례했는지 내용을 듣고 싶지 않았는지 존대를 더 강력하게 사용했어야 했는지 표정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내가 하던 얘기는 예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혹은 전체가 기각되고 만다. 여러번 들으면 입 열기 무서워지고 아예 말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게 된다. 

말을 예쁘게 하라는 소리를 듣는 건 그런 일이다. 정확히 뭘 바라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요구한 적도 없는 승인을 유예당하는 일. 전달하고픈 핵심보다는 그 외의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각을 내면화시키는 일. 

나는 나이를 먹으며 누구에게도 말 예쁘게 하라는 주문을 하지 않으려 다짐한다. 말을 예쁘게 한다는 것이 정확히 무언지 아무도 모르는데 그런 요구가 난무하는 것은 빈 신호를 보내는 일이고, 텅 비었는데 화자의 기분만을 전달하는 언어신호는 관계를 망칠 뿐 아니라 나 스스로를 혼란스러운 인간으로 만든다. 요구한 사람은 자기가 뭘 바랐는지 모르게 되고, 강요당한 사람은 예쁘던 못생겼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침묵을 지키게 되고 마는. 

또한 누가 내게 말을 예쁘게 하라 주문한다면, 아무리 그 요구가 "예쁜 입"에서 "예쁜 형태"로 나온다 해도 경계할 생각이다.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면서 남에게 그걸 요구할 수는 없다. 

가끔 영화 속에서 더없이 아름다운 얼굴로 무지막지한 육두문자를 내뱉는 여성들을 본다. 나는 깔깔 웃으면서 저건 반만 예쁜 걸까 안 예쁜 걸까를 생각한다. 내가 듣기에는 아주 경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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