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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 대학 안에 있었던 여고에 다녔다. 산비탈 위에 올라앉은 그 학교는 아래쪽의 얼기설기 여러 갈래인 동네 골목길로도 접근이 가능했고 점심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남자 대학생들이 계단 아래에서 담배를 피우며 쳐다보기도 해서, 별로 바깥과 단절된 느낌이 아니었다. "바바리맨"이라고 불리던 성폭력범이자 노출증, 성도착증 환자도 간혹 나타났다. 

아이들의 반응은 다양했는데, 내가 본 중 가장 적절한 대응이자 용감한 것 중 하나는 혼자 운동장에 벤치에서 밥을 먹다가, 운동장 아래 골목길에 나타난 바바리맨이 나타나 학생들이 웅성웅성 하자 조용히 일어나 그에게 냅다 식판을 던져버린 3학년 언니였다. 깔깔대며 남자를 조롱하는 아이들, 큰 소리로 욕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두어명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었다. 그들은 울며 "짜증나"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정말 "짜증이 나서(annoyed) 울었을까?" 거의 20년이 지난 후에야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 짜증만 나서 우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들은 무서웠던(scared) 것이다. 안전하지 못한(unsafe) 느낌이었을 것이고, 아마 역겨웠을(disgusted) 것이며 어쩌면 신체적인 위협(physically threatened)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단어들을 우리가 한국어로 모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1학년으로서 한 번도 못 들어본 단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언어, 말해서 용인되는 단어, 별로 많은 언어를 갖지 못한 또래집단과 우리의 경험에 그닥 관심이 없는 교사와 부모라는 좁은 세계에서 그나마 옮겨다닐 수 있는 언어를 선택한 것이다. 그건 "짜증이 난다"는 거였고, 결국 그는 짜증이 나면 우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명백한 성폭력을 당했고, 무방비한 미성년자였고, 성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북구의 신화와 영웅의 연대기, 즉 중세 문학을 읽어보면 거기에는 공통적으로 결여된 무언가가 있다. 인물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한 서술이다. 1230년에 쓰인 "섬사람들의 영웅전설(Sagas of the Islanders)"에서, 해롤드 왕이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많은 적을 물리치고 아군을 보듬었는지에 대한 장황한 이야기 중 왕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복수가 그를 자유롭게 편안하게 했는지 슬프게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정해진 역할에 따라 기대되는 행동만을 하는 개인들이 모인 사회에서는 남의 감정은 물론 스스로의 감정을 알 필요조차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 과학잡지에서 이 구절을 반복해서 읽었고 가슴이 아파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읽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 가을날 대학교 스탠드 위에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나타난 반라의 미친놈을 목격한 그 십대의 여자아이들이 두려움과 불편함을 "짜증"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너무 짜증이 나, 어떡하지? 나는 짜증이 나면 울어.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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