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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오랜, 좋지 않은 버릇이 있다. 불안하거나 초조할 때 손톱 주변 피부를 뜯어내는 것, 그리고 일명 "돼지털"이라 불리는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골라내서 뽑는 것. 손끝을 쥐어뜯는 버릇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머리카락을 뽑는 건 중학교 때 시작되었다. 

손끝은 가을이 되면 건조해진다. 말랑하던 부분이 굳어지며 다른 손가락으로 건드리기 좋게 각이 잡힌다. 특히 손톱 주위의 거스러미가 그렇다. 매끈하지 않은 그 피부의 요철을 마치 염주 세듯 손가락 끝으로 쉼없이 매만지며 마음의 안정을 얻다가 툭, 잡아뜯어 곧잘 피를 보곤 했다. 피부가 이런 식으로 괴롭힘을 당하면 염증이 생겨 부풀어 오르거나 딱딱하게 굳는다. 그러면 만질거리가 더 생기는 셈이다. 뜯어내는 부위가 확장된다. 고등학생 때는 증세가 너무 심각해서 연필이 닿는 손가락 부위에 힘을 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손가락 반이 넘어까지 뜯고 또 뜯어 항상 손이 퉁퉁 부어 있었다. 이것 때문에 벌도 많이 받고, 맞기도 했다. 열 살 때인가 발가벗고 현관문 밖으로 쫓겨난 적도 있다. 아마 그래서 더 순조롭게 악화되었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 만신창이가 된 손을 가진 채 사회생활을 할 수는 없었기에 증세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좋아졌다. 이제 손을 활짝 펼치고 남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양 엄지는 기온이 떨어지고 공기가 건조해지는 계절이 되면 교묘하게 괴롭힌 작은 상처가 선명해지곤 한다. 제 손끝을 매만지며 무언가 걸리는 부분을 찾아내서는 반복해 괴롭히는 그 쾌감은 아마 죽는 순간까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고통과 초조함이 뒤범벅되어 미쳐버릴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1분 1초가 지나가는 것을 지탱하게 해주던 나의 기괴한 습관은, 그렇게 나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반곱슬에 힘있고 뻣뻣한, 굵고 건강한 모발을 타고 났다.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굴곡져 자라는 데다 비가 오면 주체할 수 없이 목도리도마뱀처럼 얼굴 주변으로 퍼져간다. 중학교 때 같은 학급의 누군가 "너는 돼지털이 많다"며 몇 개를 뽑아준 이후로, 손끝으로 울퉁불퉁한 머리카락을 골라서 억지로 뜯어내는 것은 나의 비밀스러운 재미가 되어버렸다. 머리를 단정하게 몇 번이고 빗었는데도 반항하듯 튀어나온 돼지털을 뽑아내는 건, 마치 병충해 맞은 작물을 솎아내는 것 같은 쾌감이 있었다. 스스로를 벌주면서 느끼는 옅은 흥분에 도취되어 하루에 수십개를 뽑아댔다. 재미가 있었다. 어느날 거울을 보고 두피의 빈 공간을 발견할 때까지. 

스스로 머리를 뽑아 대머리가 되었다는 사연을 지닌 채 살기는 죽기보다 싫었기에 이것도 억지도 호전되었다. 그러나 역시 완전히 그만두지는 못했다. 이제는 뽑지 않고 조그만 쪽가위로 두피에 바싹 붙여 잘라낸다. 혼자 있을 때만. 중학생 때처럼 마치 얌전한 스트레이트 헤어를 가지게 된 듯한 착각이야 안 들어도, 제멋대로 휘어지고 꼬인 머리카락이 사형당해 책상 위에 얌전히 놓인 걸 보는 일은 여전히 내게 작은 기쁨을 주는 것 같다. 

이 기벽이 나에게 낭비하게 한 에너지와 시간은 대체 얼마일까. 결국 스스로에게 상처를 가한 흔적이 바깥에 보이게 되어서야 안간힘을 써서 멈추게 된, 나를 강박적으로 몰두하게 만든 이 거대한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한창 손끝이 퉁퉁 붓고 머리카락을 버스에 앉아서도 고를 때, 그 어린 시절에는 의문을 가져볼 생각도 못했다. 누구도 이 증세와 나를 분리해주지 않았고 집에서는 때리거나 이를 악물고 몰아붙였다. 쏟아지는 비난과 욕설을 들으며 나는 언제 혼자가 되어 마음껏 손끝을 쥐어뜯나만을 생각했다.


여기에 이름이 있고,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건 아주 뒤에야 알았다. 영어로 검색을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였다. 


둘 다 OCD(obsessive-compulsive disorder, 한국어 번역명 강박장애) 를 겪는 사람들에게 흔히 발견되는 증상이라고 했다. 손끝을 뜯는 것은 더마틸로매니아(dermatillomania)라 불리며 신체에 집중된 반복행동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세상에는 나 말고도 몸의 여기저기를 쥐어뜯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 사람이 많으며 그들은 괴물이 아니라고. 


모근을 뜯어내는 강박증세는 트리코틸로매니아(trichotillomania)라 부른다고 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질문하고, 자기의 경험을 나누고, 도움을 주고받고 있었다. 이 증상으로 유명한 연예인에는 샤를리즈 테론, 케이티 페리, 나오미 캠벨이 있다고 했다. 저렇게 빛나고 아름다운 사람들에게도 있는 것이 나에게 있다고 했다. 이유 없이 안심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초조할 때 입술을 물어뜯거나 손톱을 잘근잘근 씹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극단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게시판도 있었다. 심리치료를 받거나 약을 처방받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건 자기파괴적인 행위라고도 했다. 스스로를 조금씩 해치며 마음의 안정을 얻는 거라고. 건강하지 않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처럼 자기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왜 스스로를 해치면서 살았지? 아니 그보다 왜 피가 나도록 손끝을 뜯고 멀쩡한 모근을 힘주어 뜯어내는 일이 "자기파괴"라는 걸 왜 깨닫지 못했지? 왜 연결시키지 못했지? 


자기파괴를 해왔다는 경악이 갑자기 두 증상을 마법처럼 멈추지는 못했지만 나는 당장 두피전문 살롱으로 달려가 비싼 빗을 샀다. 머리카락을 뽑고 싶을 때면 커다란 빗으로 언제까지고 머리를 빗었다. 두피가 탄성을 내지르며 호흡하기 시작하는 걸 느끼며 자기 파괴의 반대말은 스스로를 돌보는 일일 것이라고 되뇌었다. 

가족도 학교도 공동체로 돕지 못한 나의 고통을, 고통인 줄도 몰랐던 못생긴 비밀을, 몰래 혼자서만 즐기던 비뚤어진 감각의 만찬에 외부의 언어가 이름 붙여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내가 스스로를 해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예 증상에 대한 자각이나 정보 없이 살았을지 모른다. 혹은 운이 좋아 모국어로 정보를 찾았어도 비위생적이고, 신체 변형을 동반하며, 무섭고 더럽네요, 이렇게까지 심한 징그러운 사진을 보세요, 정신병이에요, 라고 무신경하게 말하는 네이버 블로그 따위를 보면서 또 머리카락을 고르고 있었을지 모른다. 



현상에 이름이 붙고 진단이 따르고, 그 언어를 통해 바깥과 연결되는 것은 거의 모든 것을 바꾸는 일이었다.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을 때, 나조차 나를 돕는 데 관심이 없을 때 모든 것을 달라지게 하는 일은 아주 작은 데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외부의 말로 붙은 이름을 배우는 것, 그 이름을 통해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아는 것. 내 고통이 세상에 나밖에 모르는 것이었다면 이름이 붙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이름을 알고, 더듬더듬 읽고 그것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는 일이 낫는 일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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