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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여행 떠난 부모님 집에 강아지 시터를 하러 갔었다. 날이 추워 나가기에도 마땅치 않고, 내가 사는 집에는 TV가 없기도 해서 강아지와 함께 TV를 아주 많이 보았다. 밤이고 낮이고, 채널 가리지 않고. 혼자 일하는 내가 "여러 사람이 상호작용하는 데 쓰이는 한국어", 즉 인간 관계의 다이내믹에 따라 바뀌는 언어 사용을 관찰하기에 좋은 기회였다. 


한 TV 쇼를 보는데 그 프로그램의 멘토이자 선생님 격인 중년 남성이, 그보다 나이가 많은 노년의 여성에게 "어디 줘봐요." 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가 상대방이 한 음식을 맛보겠다는 의도로 "Let me try your food(당신의 음식을 먹어보겠다)" 말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줘봐요"를 그대로 다른 언어로 옮길 수 있을까? 

한국어 화자이면서 젊은 축에 속하는 나는 어디에서 물건이나 음식을 구매하면서 "어디 줘봐요."라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는 그렇다. 특정 나이, 성별, 지위의 사람일수록 이런 식의 한국어 어미를 덜 사용하거나 더 사용할 것이다.


주세요

주십시오

줘봐

줘봐요

줘보세요

달라고

달라니까


"give it to me" 혹은 "I'll try it."의 여러 형태를 한국어로 간단하게 추려보면 이렇다. 그러면 "주십시오"도 아닌, "줘"도 아닌, "줘보세요"도 아닌 "줘봐요"를 쓰는 데는 이유가 있을까? 애초에 우리는 왜 어미를 이렇게 복잡하게 사용하는 걸까? 한국어 화자들이 발화의 핵심보다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혹은 그 반대의) 무언가"를 상대의 말에서빨리 잡아내는 것, 혹은 "한국어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니 말을 예쁘게 해야 한다"는 규범이 이것과 관계가 있지는 않을까?

또한 나의 지위나 상대의 지위에 따라, 내가 지금 너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는 것인지 반대로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따라, 내가 상대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존대의 여부" 뿐일까? 존대도 반말도 아닌 애매한 어미, 혹은 존대이지만 어딘가의 중간 영역에 존재하는 어미들은 왜 쓰는 것일까?

아마 사용하는 본인도 지각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기 때문에. 영어에서 의 tone이 하는 역할을 한국어에서는 "말투", 즉 말의 끝부분이 하고 있어서 그렇다. 말의 진짜 내용 외에도 아주 많은 정보를 전달하고 있으며,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알아듣는다. 하는 쪽에서도 듣는 쪽에서도 "왜 대화 후에 찜찜한지/기분이 나쁜지/기분이 좋은지/그 사람이 친근하게 느껴지는지" 매번 검토하지 않는다. 그게 그저 언어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영어에서는 시제가 "줘봐요"의 뉘앙스를 담당한다. 물론 위계와 친근함에 기반한 한국어 언어 체계를, 영어에서는 시제만 사용하면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마치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아니야" 와 "아니거든"의 뉘앙스를 구분하는 데 영어를 동원해서는 소용이 없듯이, 한국어 화자가 시제변화를 비롯한 영어의 동사부를 이해하는 데는 그저 "시간/수동태"가 변한다는 기계적인 설명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sleep이라는 동사를 보자.


Did you sleep? 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잤니?"라는 뜻이다.

Have you been asleep?은 "잠들어 있었어?" 정도로 번역된다.(점점 복잡해진다)

Have you been sleeping?에 약간의 맥락이 추가되면 "너 여태 잤니?"가 될 수도 있다.(단순한 질문이 아니게 된다)


어른의 꾸지람을 듣기 싫어 하루 종일 구석진 곳에 숨어 있던 어린이를 발견했을 때 "Are you hiding here?"보다는 "Have you been hiding here?"의 질문이 맥락상 어울리는 것, 집세를 못 내서 자기 차에 살림을 차린 사람에게 "Do you live in your car?" 보다는 "Have you been living in your car?"이라고 묻는 것처럼. 

모두 미드에 등장한 예시들이다.

단순과거, 현재완료, 현재완료진행을 우리가 정규교육과정에서 흔히 배우듯이 그저 2차원 평면에서 균일하게 나누어진 타임라인을 쪼갠 다음 앞뒤를 구분하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넘어가면 영어의 "줘봐"를 놓치게 된다.




그래서 시제를 영어의 뉘앙스 변환으로 접근하면 많은 것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Did you lie to me? 보다 Have you been lying to me?에서 더 진한 배신감이 느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미드나 영화에서 주인공이 왜 갑자기 벌컥 화를 내며 "지금 무슨 뜻이야? 뭔가를 암시하는 거야?"라는 데에도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시제에는 그저 "시간의 다름"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오늘부터 좋아하는 미드를 볼 때는, 5분이라도 영자막을 띄운 다음 왜 이 상황에 저 시제가 쓰였을지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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