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길에서 떡볶이를 사먹던 젊은 남성 둘이 있었다. 술에 취해 귀가하던 중년의 한 남성이 그들에게 다가가 "나도 하나 먹자"며 허락 없이 음식을 집어먹으려 했고, 이에 아예 떡볶이 한 접시를 주문해 주려고 하자 "내가 거지냐"며 별안간 폭력을 휘둘렀다는 얘기였다. 자기 음식을 원하는 낯선 사람에게 떡볶이 한 접시를 사 주려고 했던 이들의 선의가 어이없는 방식으로 거절당했을 뿐 아니라 물리적 폭력으로까지 이어진 이 사건을 처음 전해 듣고 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왜 달라고 하는 것을 주었더니 화를 내는 것일까?" 자신이 원하는 것은 "떡볶이를 한두점 먹으려고 했을 뿐인데" 아예 한 접시 시켜주는 행위가 마치 부랑자 취급 받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진술했다는 데에서 나는 그의 머릿속..
나는 영화를 자주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번 마음에 든 영화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다큐멘터리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진지하고 어두운 영화들로, 그 이야기들이 하나의 통일된, 정돈된 감정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나를 질문하게 하는 점을 좋아한다. "호텔 르완다"가 그런 영화였다. 얼마 전에 그 영화에 대한 세부 사항이 기억이 나지 않아 검색하다가 그 영화를 "감동실화"라고 소개하는 블로그를 보았다.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감동실화"? 호텔 르완다(Hotel Rwanda)는 벨기에가 아프리카의 소국 르완다를 점령해서 분할통치하다가 부족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내전으로 치닫는 것을 모르는 척 떠나버린 데부터 시작되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1994년 4월에 시작되어 약..
"탈조(선)"가 유행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조선, 즉 한반도를 탈출해서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뜻인데 단순히 "지금 여기가 아닌 아무데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과도 다른 것 같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제 진지하게 여기 아닌 다른 땅에서의 삶을 계획하는 것 같다.탈조하려면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직업이다. 또다른 중요한 요소인 언어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낯선 곳에서 소속감을 주고 상호작용할 친구를 만들 베이스캠프가 될 것이기에 그렇다. 일자리를 구하려면 나를 소개해야 한다. 일하는 나를 소개하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은 이력서를 쓰는 것이다.그런데 내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떻게 하면 영어 이력서를 잘 쓸 수 있는지"에 대해서가 아니다.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
얼마 전에 한국 드마라를 보다가 한국어가 닦아놓은 언어의 길에 대해 생각하게 된 적이 있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만나자고 해 만났더니 강압적으로 키스를 하고 몸을 밀치는 등 성적 괴롭힘과 폭행을 겪은 여자 주인공이 울면서 피해 사실을 호소하는데, 그 가장 친한 친구가 함께 속상해하면서 여자 주인공에게(즉 피해자에게) "뭘 잘했다고 울어?"라 말하는 장면에서였다. 이 "네가 뭘 잘했다고 우느냐"는 일종의 관용어구는, 보통 (울고 있는) 피해자를 나무라는 데 사용된다는 점에서도 문제이지만 그 이전에 대체 무슨 말인지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뭘 잘했다고 울어?"는 우선, 질문일까? 진짜 질문은 아닐 것이다. 많은 한국어의 질문이 그렇듯(예시: 그래서 지금 네가 잘했다는 거야?) 수사적인..
해외에서 방문한 친구에게 영어로 "너 언제 한국에 도착했어?"라고 물어보고 싶다면 뭐라고 할까? 혹은 "언제 (너희 나라로) 출발해?" 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면? 인천공항 출국장에 내걸린 푯말처럼 departure(출발)과 도착(arrival)을 사용할까? "언제 왔어?"라고 지나가듯 어떻게 물어볼까? come and go를 사용하기는 좀 그런 것도 같고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인천공항에 언제 내렸냐고 좀 물어보고 싶은 것 뿐인데.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히는 사람들이 많다.북미의 친구들은 이런 경우 간단히 fly in & out(날아 들어오다 & 나가다)를 자주 사용한다. "When did you fly in?"하면 된다. 상대가 도착했을 때 어떻게 왔을지, 그 그림이 어땠을지를 무의식적으로 재구성..
나는 어릴 때부터 학교 국어 시간에, 혹은 일간지 사설에서 “한국어는 여러 다른 색을 지칭하는 형용사가 많은 언어”라는 주장을 자주 접했다. 이를 증명하는 사례로 노란, 샛노란, 누런, 누르스름한, 노리끼리한, 누르죽죽한 등의 형용어를 드는 것도 많이 보았다. 일단 같은 스펙트럼 안에 있는 색을 표현하는 단어 가짓수가 많으니 별 의문을 갖지 않고 그런가보다 했던 것 같다. 그런 색깔 이름들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 것은 아주 나중의 일이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안색이 좋지 않음을 한탄할 때, 열심히 요리했는데 결과물의 색감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언급하는 색의 이름은 반드시 "노리끼리", "푸르죽죽", "시커먼" 등이었다. 그 많은 한국어의 색상 이름들은 대개는 정말 색상표에 올릴 수 있을만한, 다른 색..
얼마 전에 내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 중 한 명과 카카오톡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으로 시작한 대화 끝에 그는 “피곤하고 사는 게 넌더리난다”고 말했다. 임금은 물가가 오르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늙은 것은 무서우며 돈 없이 늙는 것은 더욱 무섭다고. 노년에 폐지를 줍는 삶을 살면 어떡하나 걱정이 된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걱정이다. 일일이 말하기에도 벅찬 고민들이다. 나 역시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지만 하는 일마다 희망했던 대로 되지는 않는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밤잠을 설치는 일도 자주 있다. 그래서 일단 “나도 지친 상태이다(I’m exhausted, too)”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지친 것과 공포는 구분해야 하며, 머릿속에서 공포를 만들어 내지는 말..
외로움은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말 그대로. 2015년 Persepectives in Psychological Science지에 게재된 한 연구는 사회적 외로움이 특히 65세 이하의 연령층에게 주요한 사망 원인이 된다고 보고 있는데, 유의미한 사회적인 교류가 있는 집단보다 그렇지 않은 집단의 사망률은 32퍼센트까지 높았다. 여기서의 유의미한 사회적 교류는 배우자를 비롯한 가족을 뜻할 수도 있지만 넓은 의미로는 정기적으로, 혹은 상시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 집단이 존재하느냐의 여부를 뜻한다. 그렇다면 의례적인 “How are you?”를 물어보는 것이 조금은 덜 외로워지는, 즉 내 주변의 공동체와 교류하는 방법이라 생각하고 영어로 질문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대개는 대수..
앞선 글에서 Siri와 말하기 연습하기를 다뤄 보았다. 첫번째 글에서는 Siri에게 말을 걸고 나면 한번의 대답만이 돌아오는 질문을 소개했지만 이번에는 내가 팔로업 질문을 받거나(!) Siri에게 연이은 주문을 할 수 있는 질문을 다루려고 한다. 한 번의 질문과 대답, 혹은 명령어와 수행만으로 이루어지는 연습과는 달리 실제 대화와 비슷해지기 때문에 짧은 질답에 익숙해지고 나서 다음 단계로 삼아 연습하기에 좋다. 1. 반복 요청 연습 Siri에게 단어의 뜻을 물어본 다음 반복해 달라고 부탁한다 "definition of computer” 컴퓨터의 정의에 대해 물어보았다. Siri가 컴퓨터의 정의를 소리내어 읽어주는데, 여기서 도중에라도 폰 하단의 빛나는 아이콘 부분을 누르고 “Can you repeat..
혹시 그런 경험이 있는가? 내게 친절하고, 나를 칭찬해 주고, 나를 보면 반가워하고, 말이 잘 통하는 것 같은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생각하면 어쩐지 “쌔한” 느낌. 지난번에 했던 그 얘기 있잖아, 하고 말을 꺼내면 내가 언제 그랬어? 라고 되묻는 사람. 굳이 해도 되지 않을 말을 하고, 꼭 해야 할 말은 않는 사람. “그걸 모를 사람이 아닌데” 계속 모르는 사람. 혹은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 말하면서 내가 싫어하는 일을 계속 하는 사람. 분명 내게 우호적인, 애정어린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인데 돌아서 생각해 보면 항상 혼란스러운 감정을 남기는 사람. 나는 이런 사람들과 그 감정들을 “알고보니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나 “사정이 있었겠지”로 넘기고 잊으려 애쓰며 오랜 세월을 보냈었다. 이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