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한국어 사용자들이 영어 말하기를 두려워한다. 영어를 제 1언어로 구사하는 친구들 앞에서는 괜찮다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친구들 앞에서는 더 힘들어 하기도 한다. 영어를 둘러싼 동아시아 특유의 양가감정과, 주변인에게 평가당하면 어쩌나 싶은 염려가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사람이 아니지만 사람과 말하는 것처럼 스피킹 연습을 도와주는 AI 어시스턴트가 어학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AI는 애플의 Siri와 아마존의 Alexa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Siri로의 접근성이 훨씬 뛰어나므로 Siri를 사용해 말하기 연습을 해보자. (세팅에서 “시리” 혹은 Siri로 들어가면 언어를 영어로 바꿀 수 있다. 다양한 액센트가 존재하니 자신이 말하고 싶은 쪽을 선택하면 된다. 언..
지난 주말에 여행 떠난 부모님 집에 강아지 시터를 하러 갔었다. 날이 추워 나가기에도 마땅치 않고, 내가 사는 집에는 TV가 없기도 해서 강아지와 함께 TV를 아주 많이 보았다. 밤이고 낮이고, 채널 가리지 않고. 혼자 일하는 내가 "여러 사람이 상호작용하는 데 쓰이는 한국어", 즉 인간 관계의 다이내믹에 따라 바뀌는 언어 사용을 관찰하기에 좋은 기회였다. 한 TV 쇼를 보는데 그 프로그램의 멘토이자 선생님 격인 중년 남성이, 그보다 나이가 많은 노년의 여성에게 "어디 줘봐요." 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가 상대방이 한 음식을 맛보겠다는 의도로 "Let me try your food(당신의 음식을 먹어보겠다)" 말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줘봐요"를 그대로 다른 언어로 옮길 수 있을까? 한국어 화..
연휴 동안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고, 풍경 사진을 많이 찍었다. 겨울바다는 제주라 해도 추웠고 눈이 시린 바람이 불었지만 석양이 지는 해변과 먼 수평선은 사진을 찍는 동안 숨을 잠시 참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photo credit: 본인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나서 같은 장소에서 찍힌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보려고 태그를 따라갔다. 서귀포 앞바다가 마치 남국의 휴양지처럼 찍힌 예쁜 사진이 있기에 탭해서 크게보기를 했더니 "뷰가 오지고 지리네"라고 적혀 있었다. 언어는 언어일 뿐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사용자가 선택한 언어는 모두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개짱이다, 대박이다, 오진다, 지린다 등의 유행어, 혹은 은어부터 심지어 아주 심한 욕설까지도. 하지만 "오지고 지리고 쩔어주"는 대신 "abs..
오늘은 가상의 대화 두 개로 글을 시작해 보기로 한다. 1. 내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고 가정하자. - 북미 영어 사용자인 친구가 나에게 묻는다. "What do you want(무엇을 원하니)?"- 한국어 사용자인 친구가 내게 묻는다. "뭐 받고 싶어?" 2. 구독하고 있던 주간지를 그만 보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해지를 신청했는데 해지되지 않았다. - 영어로 고객센터에 전화를 한다."Is there a reason why you want to unsubscribe to it(해지하고 싶은 이유가 있습니까?)"이유를 생각해 본다. 더이상 보기 원하지 않는 게 이유이다."I just don't want it anymore(그냥 더 원하지 않아요)." - 한국어로 전화를 한다."해지하고 싶으신 이유가 있으세요?..
이번 글은 내가 유학을 떠나던 당시에 관한 이야기다. 오히려 영어로는 수 페이지짜리 에세이로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지만 한국어로는 한번도 시작하지 않았던 이야기. 2013년 1월 뉴욕 땅을 처음 밟기까지 나는 한번도 미국에 가본 적이 없었다. 미국에 친척이나 친구도 없었다. 유럽 배낭여행과 동남아 휴양 관광은 가본 적 있었어도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나라에 일주일 이상 머물러본 적이 없는 내가, 그 전해 여름에 주운 유기견을 데리고 혼자 뉴욕에 가서 개와 함께 살 집을 구하고 그 개가 입양될 때까지 돌보며 공부도 하리라는, 지금 입 밖으로 꺼내보면 터무니없는 그 계획은 내가 영어 자아를 가졌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영어로 말해도 터무니없긴 마찬가지이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아이디어 자..
2017년 11월 10일 오후 4시경인 지금 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내일도 비가 올지 궁금하다면 한국어는 어떻게 질문할까? "내일도 비 와?"혹은 "내일 비가 올까?" 라고 묻지 "Will it rain tomorrow?(내일 비가 올 것입니까?)" 라 묻지 않는다. 이렇듯 한국어는 미래시제가 존재하긴 하지만 현재시제가 미래시제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언어이기도 하다.UCLA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Keith Chen은 "언어가 경제적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76개 국가를 조사하였고 그 결과 영어처럼 "미래 시제가 엄격하게 구분되는" 언어와 "문법상 현재와 미래에 차이가 없는" 언어의 구사자 사이에 현격한 저축율의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futured language" 즉..
이번 글은 최근 듣고 본 몇 가지의 일화로 시작하려 한다.1. 트위터에서 리트윗되어 오는 낯 모를 이들의 일상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 않을 때가 자주 있는데, 얼마 전 노량진 수산시장을 방문해 바지락 반 근을 샀다가 점포의 주인에게 "그것밖에 안 사느냐"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야기가 그러했다. 책정된 가격을 지불하고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에게 "너는 너무 적은 양을 샀으므로 내게 너무 적은 돈을 벌게 해 주었다"는 요지인 듯한(그렇지 않다면 발화 의도가 무엇인지 더욱 알 수 없는) 말을 작별인사 대신 했다는 이 사람의 연령대가 대략 짐작될 정도로 나도 종종 겪는 언사이다. 2. 어린이를 많이 만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한 아동이 불쑥 자기에게 찾아와 결혼을 했냐고 질문하기에 "아니(안 했어..
유명한 미국 드라마 Orange Is the New Black을 보면 주인공 파이퍼가 자신의 선의의 거짓말에 대해 이렇게 변명하는 장면이 있다."Many cultures value their dignity over the truth. In Korea, they call it kibun.(여러 문화권에서 진실보다 사람들의 품위를 우선시해요. 한국에서는 그걸 기분이라고 불러요.)" 그럼 한국에서 우리는 실제로 "기분"을 어떻게 말할까? 이전 스몰톡 글에서 다루었듯이 우리는 서로에게 어떻게 지내냐고 일상적으로 묻지 않는다. 내가 기분이 나쁘거나 우울해서 얘기할 사람이 필요할 때 아무도 먼저 물어봐 주지 않는다면 한국어의 맥락에서는 1. 참는다2. 주변에 들어줄 만한 사람이 있을 때 "기분이 나쁜 티를 낸다"...
나에게는 오랜, 좋지 않은 버릇이 있다. 불안하거나 초조할 때 손톱 주변 피부를 뜯어내는 것, 그리고 일명 "돼지털"이라 불리는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뽑는 것. 둘 다 OCD(obsessive-compulsive disorder, 한국어 번역명 강박장애) 를 겪는 사람들에게 흔히 발견되는 증상이며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한국어에서 "-장애" 라든가 "-증(disorder)"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와 거부감. 그에 대한 사회의 인식... 등은 제쳐놓고 이야기를 진행하려고 한다. 영어에서도 반가운 글자들은 아니다. 한국어로 "손끝을 뜯는다" 혹은 "손 뜯기"를 검색해보려고 하면 "손 뜯는 버릇 고치기"가 자동완성된다.(구글 기준, 네이버로 검색하면 더 심란한 결과들이 뜬다. 그러나 언어를 달리해 검..
최근 한 북미인이 영어학원 광고에 나와 "'Hello, how are you today?'""'I'm fine, thank you, and you?' No, no, no, no. Come on, guys. Let's get serious."자막: I'm fine, thank you, and you, 라구요? 그런거 말구요... 우리 진짜 이야기를 해보자구요. 로 시작하는 1분짜리 연설을 하는 유튜브 비디오가 화제가 되었다. 몇 번이고 돌려보았는데, 1.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2. 한국어와 영어(특히 북미식)의 담화 스타일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어서"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메시지가 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1. 우선 화자가 제안하는 "진짜 영어" 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