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how to be

uninvited

RomiT 2020. 3. 1. 00:43

227

미 국무부가 한국여행 경보단계를 3단계로 격상시켰다. 확진자는 밤새 300명이 넘게 늘었고 대부분 대구에서, 신천지 신자들 사이에서 발생했다. 이틀 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친구는 LA 한인타운 분위기도 뒤숭숭하다며 대한항공 승무원이 다녀간 식당들이 발칵 뒤집혔다고 했다. 유나이티드에서 한국 출항 여객기를 줄인다는 말이 돈다는 와중에 델타는 이미 한국 항공편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여전히 신용카드는 찾을 수 없고 나는 무기력증이 절정에 달했다. 스스로의 판단력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위기상황에 자기를 믿지 못하면 불안해하며 손톱을 씹고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여행이 꼭 필요했다. 연초에 감정이 크게 닳아진 일이 있었고 그로 인해 스스로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해 있었다. 나는 나와 불화를 겪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나를 회복하기 위해 나의 일부를 다시 만나 위안을 얻고 쉬고 싶었다. 언젠가부터 내 주변을 맴도는, 바깥에서 감시하는 시선을 따돌리고 다시 온전한 나로 웃고 싶었다. 혼자서는 못 하는 일이었고 여기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내게는 항상 그랬다.

그런데 하늘길이 닫히고 있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조국은 섬이었다. 삼면이 바다인 반도라고 어릴 때 배웠지만 북한은 바다나 마찬가지인 땅이고, 그래서 내게 인천은 항구인 동시에 바깥으로 향하는 유일한 포탈이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부터 한두 나라씩 한국에서 온 사람들을 검역하거나 입국금지시키기 시작하더니 월요일에는 20, 이틀 후에는 영국과 필리핀을 포함한 40개국이 한국에서 온 사람들을 입국시키지 않겠다고 했다. 이 속도라면 당장 내일, 아니 오늘 어느 나라가 문을 걸어잠글지 알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전세계가 한국발 인간을 대상으로 셧다운되고 있었다. 21세기의 봉쇄는 이렇게 시작되는 거였다.

 

 

228

인천공항에 이렇게 사람이 없는 건 처음 본다. 짐을 부쳤는데도 체크인에 20분 걸렸다. 기록이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무겁게, 천천히 걷고 있다. 면세점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이 거대한 시설 전체가 마법에 걸린 것 같다. 항상 온갖 형상의 인간들이 온갖 높낮이의 짐을 끌고 모였다 흩어졌다 하며 못 견디게 바글대던, 인간시장같던 이곳이 쥐죽은듯 조용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뉴스를 검색했다. 어제 아침에 트럼프가 한국과 이탈리아의 입국금지는 아직 이르다고 발표했던 것과는 달리 한국의 확진자가 계속 늘어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뉴스가 헤드라인으로 떴다. 오전 9시를 기점으로 한국의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는 2천명을 돌파했다. 검사속도가 빠르고 검사 대상이 많은 것도 있지만 바이러스가 퍼지는 속도를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한편으로 나는 계속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독감이잖아. 그렇지 않아?

 

간밤에 새벽 두시까지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친구들과 하던 카톡 대화는 아침에 다시 이어졌다. 미국에서는 LA 한인타운에 난리가 났다고 했다. 한국인 혹은 지난 2주간 한국에 방문했던 사람들을 입국하지 못하게 하거나 격리시키는 국가는 이제 50개국에 달했다.  한국에 돌아가서 확진 판정을 받은 대한항공 승무원이 케이타운 식당들을 돌아다닌 후에 뒤늦게 식당 주인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소식을 스크린샷해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아침 8시에 벌떡 일어나서 개를 산책시키고 운동을 다녀오려 했지만 서울시에서 경보 알람이 울리고 한국에서 미국에서 카톡이 울려댔다. 나는 트위터 뉴스를 갱신하는 걸 멈출 수 없었다. 결국 오늘 비행기에 자리가 남았는지 아시아나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하게 되었고 뉴욕의 고마운, 다정한 친구가 언제든 두 팔 벌려 환영이다고 말해주어 나는 최종적으로 오늘 저녁비행기로 티켓을 변경하게 되었다. 너무 빠르게 상황이 변하고 있었다. 그냥 할 수 있는 걸 해야 했다. 오늘 저녁 비행기를 탄다 해도 도착할 때쯤이면 검역대상일 수도 있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내가 난민이라 생각했고 동시에 그게 배부른 자의 망상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그게 망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은 인식이 따라가는 속도를 뛰어넘었다. 내가 사는 골목을 돌아보면 거기가 전쟁통은 아니었다. 물리적으로 변한 것은 없었다. 마트에 물이나 쌀이 동나지도 않았다. 길에 사람이 뜸해지고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왠지 거리를 유지하게 된 것뿐이었다. 이게 SF소설이었으면 조회수가 40 정도 되는 습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취소되기 시작했다. 사람이 모여서 가능한 모든 것들. 콘서트, 연극, 학회, 수업, 강연, 곧 개학도 연기되고 개강도 연기되었다. 기숙사가 소개되고 소독되고 비워졌다. 임시직에 있는 사람들, 어린 사람들, 여성,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해고되거나 무급휴가를 받았다. “좋은 회사, 큰 회사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꼼짝없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경기를 맞았다.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빈약한지 새로운 독감이 반도에 상륙한지 2주만에 우리는 체감하게 되었다.

북쪽에 있는 이웃이 불지옥과 3차대전의 가능성으로 아무리 자주 위협해도 흔들리지 않았던 종류의 굳건한 일상이 비명도 못 내고 단숨에 금이 갔다.  

 

당분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인천-뉴욕행 비행기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텅텅 빈 건 아니었지만 항상 만석에 가까워서 바로 옆자리만 비기를 기대하기도 어려웠던 뉴욕 직항에 좌석 세 개가 연달아 비어 나는 편하게 누워 잘 수 있었다. 중간에 깨지도 않고 잘 잤다. 한국에서 아침이면 오늘은 또 무슨 기막힌 소식이 앞다투어 눈을 어지럽힐까 무서워하면서도 급하게 스마트폰을 켜보던 걸 못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저녁 820분 비행기가 거의 정시에 문을 닫고 출발해 기내식으로 저녁을 먹고 영화를 한 편 보고 잠이 들었다가 깨니 도착을 두시간 반 남겨둔 때였다. 비행기 안은 어둡고 조용하고 사람들은 잠들어 있었다. 내 마음속의 겁먹은 어린애가 상상한 것처럼 누군가 패닉을 일으키거나 고열로 쓰러지지도 않았다. 가끔 저 앞쪽에서 아기가 울었다. 승객 중 누가 한국인인지는 알기 쉬웠는데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잘 때조차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공항 입국심사대에는 줄이 길지 않았다. 뭐가 문제였는지 내 줄 한참 앞에서 검색대를 지나던 동양인 여자애가 세관 심사와 함께 가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평소에도 일어나는 일이었겠지만, 굳이 동양인이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을 수 있겠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신경이 쓰였다. 불안했다. 그러나 막상 내가 마주한 세관은 친절했다. 미국에 며칠이나 있을지, 주소가 어딘지를 묻고는 지문을 찍고 좋은 여행 하라며 보내주었다. 고마운 친구 부부가 JFK 바깥에 나를 마중나왔고 미셸의 남편인 닐은 본인이 감기에 걸려서, 그리고 농담으로 마스크를 쓰고 팔을 벌려 나를 맞아주었다. 한국에서 바로 온 나를 공항에서 픽업하는 것이 얼마나 용감하고 사랑이 넘치는 행동이었는지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229

뱃속 아랫쪽에서 느껴지는 슬픔이 있다. 몸이 느끼는 울멍함. 어디에도 초대받지 못하는 사람이 가만히 발끝을 보며 느낄법한 슬픔. 혹은 누구나 다 초대받는 장소에 아무도 모르는 채로 갔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주길 기다리며 느낄 법한 슬픔. 어젯밤 닐과 미셸의 퀸즈 집에 도착했을 때 닐의 누나가 2주째 머무르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건 모르는 사람이 자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깨워선 안 되겠다, 내일 아침에 어떻게 인사하지?”라는 어색함 정도였지 막상 내가 생화학적 위협이 되었다는 자각은 없었다. 짐을 내려놓고 곧 닐의 누나가 방에서 나와 거실에 앉아있는 나와의 거리를 1.5미터 정도 유지하며 대화를 시작했을 때 천천히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지역 공중보건에 경보를 울릴 사유라는 걸.

What makes us us and what makes them them?

닐의 누나는 대화하는 와중 테이블 위에 놓인 손세정제를 거의 1분 간격으로 짜서 손과 팔에 마구 펴발랐다. 자기 딴에는 내가 눈치 못채게 한다고 조심하는 것 같았지만 나도, 닐도, 미셸도 다 알았다. 그리고는 곧 친구 집으로 간다며 집을 싸서 날듯이 떠났다.

아침에 일어나자 한국에서는 확진자가 3천명 이상, 사망자는 17명에 달했다고 했다. 한국에서 온 사람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검역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제한을 가하는 국가의 개수는 72개가 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전세계가 닫히는 중이었다.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