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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물아홉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두 개의 적금통장에 들어 있던 칠천만원을 모두 달러송금이 가능한 시티은행 계좌에 옮기고 외고와 자립형 사립고, 국제고에 진학하고 싶은 중학생들에게 스물세 단락짜리 토플 지문 가르치던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나는 한번도 가본 적 없었던, 영화에서나 보던 뉴욕으로 떠났다. 같은 해 여름 길에서 주운 노란 진돗개 믹스를 데리고. 

나는 죽지 않았고, 강도당하지 않았고, 총 맞지 않았고, 사기당하지 않았다. 운명의 상대나 중동 부자를 만나지 않았고, 석사취득과 동시에 기적적으로 미국 학교에 선생으로 취업하지도 않았고, 갑자기 한식 사업가로 변신하지도 않았다.

나는 한국에 돌아왔다. 그래도 내 삶은 지진이 난 것처럼 변했다. 나는 내가 결혼해서 딸을 하나 낳아 기를 사람이라는 아이디어를 완전히 포기했다. 나는 시간이 지나는 것을 용서하고 중력과 거리를 견디기로 했다. 나는 내가 여태 길에서 죽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길에서 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여섯이 되었으며, 가족 중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으며, 남자를 사귀지 않고, 혼자 일하고, 앞으로도 혼자인 인생을 계획하고 있다. 

이십대 중반부터 나이 먹는 것은 조금씩의 치욕이었다. 내가 한번도 허락하지 않은, 여전히 용납하지 않는, 항상 싸우고 있는 종류의 치욕. 절대 영원히 살고 싶지 않으며 닥터 케보키언의 일대기를 좋아하고 노화가 중력과 산화의 산물이라는 걸 이해하는 품위있는 개체에게 가해지는 이해할 수 없는 치욕. 

대화 중의 의미심장한 침묵을 견디는 것, 짐작이 가는 이유는 있지만 확인하고 싶지 않은 그런 치졸하고도 사소한 이유로 영영 멀어지고 마는 오랜 친구들, 속에 들어앉은 모르는 사람의 시선으로 나를 보는 것, 매일밤 두려움과 싸우는 것, 혼자 풍성하고 말끔한 식탁을 차리자고 장을 보러 나섰다가 결국 잔뜩 지쳐 택시 기사와 싸운 후 집에 와서는 찬거리를 냉장고 안에 정리할 기운도 없고 마는 것, 앞으로 무엇이 다가올지 모르는 심연 안에 손을 집어넣고 휘휘 저어보는 기분을 매일 아침 그리고 매일 밤 느끼는 것, 그래도 하루하루 싸우는 것, 매일 매시간 매순간 어디서 닥쳐올지 모르는 크고 작은 상채기들이 지긋지긋할지라도 감당하겠다고 마음먹는 것, 기어서라도, 어딜 가는진 모르겠지만, 가겠다고 결정하는 것.


그게 여기서 여자로, 혼자로, 개인으로 실존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한마디를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뤄왔다. 나는 여자가 아니라 사람이지. 그래, 여자이기 이전에 사람이지. 약간 버티는 기분으로, 또는 아직은 이만큼 뽐내는 기분으로, 내가 생각하는 머릿속의 내가 여자는 아니지, 그래 사람이지, 하는 마음으로. 마치 내가 여자로 사는 삶에 대해 말하면 수천년간 말해져온 똑같은 내러티브에 끌려들어갈 거라는 두려움으로. 나는 여자지만 그런 여자, 는 아니란 느낌으로. 아니아니 여자를 욕보이거나 얕보는게 아니라, 나도 알고 너도 아는 그런 느낌으로, 여자에서 모욕적인 부분만 전부 빼고 아주 열심히 찾으면 남는 그런 사금같은 승리의 느낌으로 나는 여자라고. 그런데 그런 승리를 거둔 여자는 내가 여자라고 말머리에 드러내지 않는다고.


어쩐지 우는 소리도 시원하게 못하고 마는 것, 그렇다고 씩씩한 호걸도 아닌 것, 어디 가서 밥이라도 사면 일사불란하게 수저를 놓는 여자들을 보며 왠지 가슴이 쓸쓸해지는 것, 정말 일어나고 싶은 것인지 그냥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는 것인지 그리고 그걸 물어보면 차라리 물어보지 않은만 못하게 될까봐 돌아서는 발소리도 조심조심한 그들을 보내고 돌아서면 이상하게 허전한 것, 하지 못한 말과 미진한 감정과 먹지 못한 디저트와 말도 꺼내지 못한 파티들이 찬찬히 휘발되는 것.

세상을 구하고 싶은 것인지 빨리 적당히 죽고 싶은 것인지 어디의 어떤 형태의 행복에 얼마만큼 욕심이 있는 것인지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아직, 숨을 쉬고 있다고 생각하면 여기부터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돌이킬 수 없을만큼 내가 아닌 결정을 한 적은 한번도 없었고 동시에 감옥 안 갈 정도의 멍청한 짓은 좀 해봤으니 이제 물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만 옷을 적시리라고 느껴지는, 그런 정도로 스스로와 화해한 여자가 동아시아에서 개인으로, 홀로 산다는 것은 내가 여기 태연히 적건대 혁명이다. 이렇게 천만 명이 천 년 동안 살아도 여전히 혁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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