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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의 지시가 떨어진 이후로 나는 재택근무를 하며 되도록 밖에 나가지 않았다. 필라테스 스튜디오도 크로스핏 짐도 닫은 상태에서 아주 마음 놓고 운동마저 버렸다. 운동하지 않는 안전하다잖아, 같은 같지도 않은 핑계를 입속에서 중얼대며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홀린 것처럼 옛날 시트콤을 봤다. 시작은 왓챠에서 400회도 넘는 방영분을 모두 모아 송출해주는 < 논스톱>이었다. 내가 대학 신입생이던 때와 비슷하게 겹치던 시기에 인기를 끌었던 20분짜리 꽁트는 박경림, 장나라, 조인성 같은 당대 최고의 스타들을 배출했고 숱한 유행어가 세상 빛을 보게 만들었었다. “ !” 오바다같은.

내가 예전을 그리워한다는 생각은 살면서 번도 적이 없었다. 항상 오늘보다 내일이 좋았고 삶에의 통제력이 하나도 없었던 청소년기나 20대에로부터 멀어질수록 행복 지수가 높아진다며 나이 먹으니까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흐르는 세월을 적극 지지하던 나였다. 그런데 외출 자제가 권고되고 해외여행은 꿈에서나 가능한, 공상과학영화에서 나왔을 법한 수상한 시절이 되자 20 전의 모든 것이 그립고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20년 전 여전히 홍대 앞에 청동 여신상이 정문에 버티고 있을 때, 당시에는 드물었던 모던하고 비싸 보이는 인테리어의 딴또딴또에서는 불그스름한 보랏빛을 띤, 생뚱맞게 채썬 비트를 올린 파스타를 팔았고 휘장이 드리워진 캐노피 침대 모양의 푹신한 자리가 놓인 카페에서 카프리 맥주를 마시며 소개팅하던 그 때를 나는 눈으로 빨아들였다. 지금처럼 홍대 앞이 술집과 포차들로 악머구리 끓듯  하지는 않았던 때, 화방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휴대폰 대리점들이 대로변에 들어서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올리브영과 4성급 호텔은 없었던 시절의, 컨버스 운동화를 사고 싶으면 읍내라 여겨졌던 신촌까지 나가야 했던 예전의 그 홍대.

베이지색 긴팔 니트에 카키색 면바지를 입고 닥터마틴 워커를 신은 후 체크무늬 루카스 가방을 메면 그렇게 떳떳할 수가 없던 스무살의 봄, 누구나 핸드폰에 덕지덕지 스티커를 붙이고 안테나에 인형을 달아 대체 남의 전화기와 바뀔 염려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열심히 보지도 않았던 뉴논스톱을 숨죽여 응시하며 나는 나 역시 한 시절에 속했음을 깨달았다. 어느 시절에나 아웃사이더였고 미운 오리새끼였고 외부인이라 생각했지만 마치 지금을 사는 나를 내가 탈출할 수 없는 것처럼, 이십 년 전 싫은 것 투성이였던 세상도 나의 일부였던 거다. 이십분짜리 시트콤으로 시작된 향수병은 급기야 그땐 지금보다 모든 게 나았는데라는 착각으로 슬그머니 나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당시 유행했던, 땅에 질질 끌릴 정도로 긴 니트 목도리를 두르고 낙낙한 울 소재의 떡볶이 코트를 입고도 코가 빨개져 춥다고 발을 동동거리는 배우들을 보면 마치 그때의 겨울은 겨울다웠고 지금은 지구온난화 때문에 계절의 운치도 없는 것처럼 현실감각이 변질되었다. 조인성이 걸핏하면 여자친구 역의 박경림을 번쩍 들어올리거나 양동근이 장나라를 업고 툴툴대며 가로수 아래를 걸어갈 때면 그때 연애는 더 로맨틱했는데, 지금보다 훨씬 덜 삭막했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마치 아빠가 즐겨듣는 트로트를 좋아하게 된 스스로를 발견한 듯 흠칫 놀라기도 했다. 당시에는 청승맞다고 누가 노래방에서 부르는 것조차 남몰래 싫어했던 발라드가 오랜만에 들으니 요즘 노래들보다 가사의 주어 술어도 잘 맞고 기승전결도 뚜렷하다고 혼자 재해석을 하기 시작했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화장하고 크롭탑을 입어야 또래들에게 뒤떨어진 취급을 받지 않는다던데, 여학생들도 34인치 배기사이즈 바지를 질질 끌고 돌아다니면서도 매력적일 수 있었던, 관심 받을 수 있었던 그 때가 왠지 더 숨쉬기 편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소셜 미디어 이전의 세계에선 핸드폰을 쉼없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뭔가 할 게 있었고 손글씨로 편지를 써서 손톱으로 눌러 접어서 전해주기도 했고 지도 앱이 없어 가끔 약속장소에서 엇갈리기도 했다. 배달음식이라곤 짜장면과 탕수육, 그리고 피자 정도였던 그 시절이 되게 아날로그였던 것처럼, 운치 있고 인간다웠던 것처럼 기억이 각색되고 있었다.

완공된지 십년도 채 안되어 교외 데이트 코스로 굳건히 입지를 지키고 있었던 일산 호수공원의 풍경이 새삼스러웠고, 인생맛집이나 인스타 핫플레이스가 없었던 연희동 골목이 그리웠다. 해외여행은커녕 서울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시기가 왔는데, 내가 가장 가고 싶은 곳은 20년 전의 홍대였다. 일주일이 넘게 나는 북한보다도 가기 힘든, 타임머신을 개발하지 않고서야 영영 돌아갈 수 없을 한적하고 좀 널널하게 촌스러운 홍대의 골목골목이 그리워 가볍게 앓았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남자 배우들이 여자 배우들에게 아유, 이게 정말!”하며 고함지르는 것이 듣기 힘들어졌다. 박경림의 기품 있고 단호한 턱선을 계속 네모낳다고 놀리는 게 싫었고 그런 괴롭힘을 마치 모두가 즐기는 가벼운 유희인 것처럼 전달하는 게 싫었다. 타고난 외모에 대해 자꾸 언급하는 걸 태연히 받아넘기거나 더 나아가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는 여자를 쿨하지 않은 것으로 묘사하는 게 불편해졌다. 지금은 죽고 없는 사람들이 모두 여자라는 것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웬일이니 웬일이니!" 하며 과장되게 박수를 치는 정다빈의 얼굴이 환하고 즐거워 보일 때마다 마음에는 그늘이 드리웠다. 가장 안정적인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아준다는 평을 들었던 김효진이 오로지 남자 때문에 웃었다 울었다 하며 소개팅에 그야말로 목숨을 거는, 사랑에 빠진 어린 연인들을 질투하는 B사감 캐릭터로 그려지는 것도 답답했다.

여자를 점수 매기는 장면이 무해한 장난처럼,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등장했다. 지금 같으면 방송 5분만에 항의하는 댓글이 빗발칠 장면들이 너무 자주 보였다. 슬랩스틱을 차용한다고 여자 배우를 밀치거나 자빠뜨리거나 코피가 터지게 해놓고 웃음을 유도하는 것이 잔인하고 저질스러웠다. 그들이 신체가 날아가서 구석에 처박히거나 바닥에 질질 끌리거나 밀쳐질 때마다 지켜보는 마음이 움찔했다.

그 시절 내리던 눈은 아름다웠을지 몰라도 내가 그 눈을 밟으며 느꼈던 절망 역시 진짜였다. 그리고 그 절망의 원인이었던 세계가 이 명랑하고 귀여운 시트콤에조차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똑같이 사회체육과 4학년인데 당연하다는 듯이 남학생들만 인턴에 지원하고 정장을 입고 면접에 갔다. 남학생의 여자친구들은 내조를 한다며 남자친구가 놓고 간 서류를 들고 숨차게 회사로 뛰었다. 극중 대학생 박경림과 장나라가 졸업 후에 어떤 미래를 그리는지, 뭘로 먹고 살 건지, 어떤 야망을 갖고 있는지는 알 수도 없었다. 그 아름다운 회상 속에, 한가하고 느슨한 홍대의 봄이 품고 있었던 어떤 무서운 것, 이제 수면으로 드러난 후에는 마치 감춰져 있었을 때가 더 나았던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국 여자라고 취업전선에서 밀려나고 승진을 못하고 때되면 결혼해서 사라질 일회용 소모품처럼 취급받을, 연봉을 삼분의 이 수준으로 받을, 동등하다는 환상 속에서 로맨스를 누렸으나 결국 어리둥절 배신당할 미래를 그 과거가 품고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도달한 2020년의 미래에서는 잠깐씩 이전의 모든 것이 핑크빛으로 각색되어 보인다. 그러나 환상이 깨지고 로맨스가 도려나가진 그 지점에서, 허울좋은 낭만과 일시정지한 젊음이 그 한계를 보인 바로 그 영토에서 나는 지금을 살아가자고 마음먹었다. 결국 우리는 좀 더 강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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