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에 개봉했던 "Inside Out"이라는 영화가 있다. 내게는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인물의 삶이, 그들의 관계가, 즉 인류가 소통하는 방식과 그 결과가 감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준 작품이었다.외부에서 1. 자극이 들어오면2. 그것을 감정으로 인지하고 3. 감정을 분류하고4. 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결정하는 (무시할 것인지, 밖으로 보일 것인지, 감정을 유발한 사람과 대화할 것인지, 소리지를 것인지, 울 것인지...) 이 과정에서 감정을 "출력"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언어이다. 언어는 남에게 내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확인시키는 데도 쓰인다. 예를 들어 "외롭다(feeling alone)"는 감정을 느끼는 아이가 그 감정을..
외로움은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 말 그대로. 2015년 Persepectives in Psychological Science지에 게재된 한 연구는 사회적 외로움이 특히 65세 이하의 연령층에게 주요한 사망 원인이 된다고 보고 있는데, 유의미한 사회적인 교류가 있는 집단보다 그렇지 않은 집단의 사망률은 32퍼센트까지 높았다. 여기서의 유의미한 사회적 교류는 배우자를 비롯한 가족을 뜻할 수도 있지만 넓은 의미로는 정기적으로, 혹은 상시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 집단이 존재하느냐의 여부를 뜻한다. 그렇다면 의례적인 “How are you?”를 물어보는 것이 조금은 덜 외로워지는, 즉 내 주변의 공동체와 교류하는 방법이라 생각하고 영어로 질문하는 연습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대개는 대수..
앞선 글에서 Siri와 말하기 연습하기를 다뤄 보았다. 첫번째 글에서는 Siri에게 말을 걸고 나면 한번의 대답만이 돌아오는 질문을 소개했지만 이번에는 내가 팔로업 질문을 받거나(!) Siri에게 연이은 주문을 할 수 있는 질문을 다루려고 한다. 한 번의 질문과 대답, 혹은 명령어와 수행만으로 이루어지는 연습과는 달리 실제 대화와 비슷해지기 때문에 짧은 질답에 익숙해지고 나서 다음 단계로 삼아 연습하기에 좋다. 1. 반복 요청 연습 Siri에게 단어의 뜻을 물어본 다음 반복해 달라고 부탁한다 "definition of computer” 컴퓨터의 정의에 대해 물어보았다. Siri가 컴퓨터의 정의를 소리내어 읽어주는데, 여기서 도중에라도 폰 하단의 빛나는 아이콘 부분을 누르고 “Can you repeat..
혹시 그런 경험이 있는가? 내게 친절하고, 나를 칭찬해 주고, 나를 보면 반가워하고, 말이 잘 통하는 것 같은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생각하면 어쩐지 “쌔한” 느낌. 지난번에 했던 그 얘기 있잖아, 하고 말을 꺼내면 내가 언제 그랬어? 라고 되묻는 사람. 굳이 해도 되지 않을 말을 하고, 꼭 해야 할 말은 않는 사람. “그걸 모를 사람이 아닌데” 계속 모르는 사람. 혹은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 말하면서 내가 싫어하는 일을 계속 하는 사람. 분명 내게 우호적인, 애정어린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인데 돌아서 생각해 보면 항상 혼란스러운 감정을 남기는 사람. 나는 이런 사람들과 그 감정들을 “알고보니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나 “사정이 있었겠지”로 넘기고 잊으려 애쓰며 오랜 세월을 보냈었다. 이것을 ..
많은 한국어 사용자들이 영어 말하기를 두려워한다. 영어를 제 1언어로 구사하는 친구들 앞에서는 괜찮다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친구들 앞에서는 더 힘들어 하기도 한다. 영어를 둘러싼 동아시아 특유의 양가감정과, 주변인에게 평가당하면 어쩌나 싶은 염려가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사람이 아니지만 사람과 말하는 것처럼 스피킹 연습을 도와주는 AI 어시스턴트가 어학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흔히 접할 수 있는 AI는 애플의 Siri와 아마존의 Alexa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Siri로의 접근성이 훨씬 뛰어나므로 Siri를 사용해 말하기 연습을 해보자. (세팅에서 “시리” 혹은 Siri로 들어가면 언어를 영어로 바꿀 수 있다. 다양한 액센트가 존재하니 자신이 말하고 싶은 쪽을 선택하면 된다. 언..
지난 주말에 여행 떠난 부모님 집에 강아지 시터를 하러 갔었다. 날이 추워 나가기에도 마땅치 않고, 내가 사는 집에는 TV가 없기도 해서 강아지와 함께 TV를 아주 많이 보았다. 밤이고 낮이고, 채널 가리지 않고. 혼자 일하는 내가 "여러 사람이 상호작용하는 데 쓰이는 한국어", 즉 인간 관계의 다이내믹에 따라 바뀌는 언어 사용을 관찰하기에 좋은 기회였다. 한 TV 쇼를 보는데 그 프로그램의 멘토이자 선생님 격인 중년 남성이, 그보다 나이가 많은 노년의 여성에게 "어디 줘봐요." 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가 상대방이 한 음식을 맛보겠다는 의도로 "Let me try your food(당신의 음식을 먹어보겠다)" 말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줘봐요"를 그대로 다른 언어로 옮길 수 있을까? 한국어 화..
연휴 동안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고, 풍경 사진을 많이 찍었다. 겨울바다는 제주라 해도 추웠고 눈이 시린 바람이 불었지만 석양이 지는 해변과 먼 수평선은 사진을 찍는 동안 숨을 잠시 참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photo credit: 본인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나서 같은 장소에서 찍힌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보려고 태그를 따라갔다. 서귀포 앞바다가 마치 남국의 휴양지처럼 찍힌 예쁜 사진이 있기에 탭해서 크게보기를 했더니 "뷰가 오지고 지리네"라고 적혀 있었다. 언어는 언어일 뿐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사용자가 선택한 언어는 모두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개짱이다, 대박이다, 오진다, 지린다 등의 유행어, 혹은 은어부터 심지어 아주 심한 욕설까지도. 하지만 "오지고 지리고 쩔어주"는 대신 "abs..
오늘은 가상의 대화 두 개로 글을 시작해 보기로 한다. 1. 내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고 가정하자. - 북미 영어 사용자인 친구가 나에게 묻는다. "What do you want(무엇을 원하니)?"- 한국어 사용자인 친구가 내게 묻는다. "뭐 받고 싶어?" 2. 구독하고 있던 주간지를 그만 보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해지를 신청했는데 해지되지 않았다. - 영어로 고객센터에 전화를 한다."Is there a reason why you want to unsubscribe to it(해지하고 싶은 이유가 있습니까?)"이유를 생각해 본다. 더이상 보기 원하지 않는 게 이유이다."I just don't want it anymore(그냥 더 원하지 않아요)." - 한국어로 전화를 한다."해지하고 싶으신 이유가 있으세요?..
오늘의 글은 질문으로 시작하려 한다. "똑바로 선다"는 것은 정확히 어떤 자세로 서는 것일까?누군가 내게 "똑바로 서봐"라고 한다면 내 사지는 어디에 위치해야 할까?머릿속에 사람이 "똑바로 선" 모습을 그려본 다음 아래 사진을 보도록 하자. 네 장 모두 구글에서 "standing straight(바로 서다)"의 검색어로 나온 사진들이다. 한국어로 똑바로 서라는 말을 들었을 때 상상한 자세가 맞는가? 다시 아래의 다른 사진들을 보자. 한국어로 "차렷" 자세를 검색한 사진들이다.첫번째 네 장의 사진과 아래 세 장의 사진에서 어떤 차이가 느껴지는지 궁금하다. 아래의 "차렷"이 더 "똑바로 선" 사진처럼 느껴진다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두 그룹 간의 눈에 띄는 차이는 1. 팔의 위치와 2. 다리..
이번 글은 내가 유학을 떠나던 당시에 관한 이야기다. 오히려 영어로는 수 페이지짜리 에세이로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지만 한국어로는 한번도 시작하지 않았던 이야기. 2013년 1월 뉴욕 땅을 처음 밟기까지 나는 한번도 미국에 가본 적이 없었다. 미국에 친척이나 친구도 없었다. 유럽 배낭여행과 동남아 휴양 관광은 가본 적 있었어도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나라에 일주일 이상 머물러본 적이 없는 내가, 그 전해 여름에 주운 유기견을 데리고 혼자 뉴욕에 가서 개와 함께 살 집을 구하고 그 개가 입양될 때까지 돌보며 공부도 하리라는, 지금 입 밖으로 꺼내보면 터무니없는 그 계획은 내가 영어 자아를 가졌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영어로 말해도 터무니없긴 마찬가지이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아이디어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