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국 드마라를 보다가 한국어가 닦아놓은 언어의 길에 대해 생각하게 된 적이 있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만나자고 해 만났더니 강압적으로 키스를 하고 몸을 밀치는 등 성적 괴롭힘과 폭행을 겪은 여자 주인공이 울면서 피해 사실을 호소하는데, 그 가장 친한 친구가 함께 속상해하면서 여자 주인공에게(즉 피해자에게) "뭘 잘했다고 울어?"라 말하는 장면에서였다. 이 "네가 뭘 잘했다고 우느냐"는 일종의 관용어구는, 보통 (울고 있는) 피해자를 나무라는 데 사용된다는 점에서도 문제이지만 그 이전에 대체 무슨 말인지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뭘 잘했다고 울어?"는 우선, 질문일까? 진짜 질문은 아닐 것이다. 많은 한국어의 질문이 그렇듯(예시: 그래서 지금 네가 잘했다는 거야?) 수사적인..
해외에서 방문한 친구에게 영어로 "너 언제 한국에 도착했어?"라고 물어보고 싶다면 뭐라고 할까? 혹은 "언제 (너희 나라로) 출발해?" 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면? 인천공항 출국장에 내걸린 푯말처럼 departure(출발)과 도착(arrival)을 사용할까? "언제 왔어?"라고 지나가듯 어떻게 물어볼까? come and go를 사용하기는 좀 그런 것도 같고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인천공항에 언제 내렸냐고 좀 물어보고 싶은 것 뿐인데.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히는 사람들이 많다.북미의 친구들은 이런 경우 간단히 fly in & out(날아 들어오다 & 나가다)를 자주 사용한다. "When did you fly in?"하면 된다. 상대가 도착했을 때 어떻게 왔을지, 그 그림이 어땠을지를 무의식적으로 재구성..
해변에서 만난 리트리버 아가. 정오가 지나 해는 높이 떠올랐고 맥주는 빨리 사라졌다. 공기 속에는 열대의 더위와 사람들이 물장구 치는 소리와 웃음 섞인 날카로운 비명이 섞여 떠돌았고 나는 반쯤 취한 채로 우리 자리와 스무 걸음쯤 되는 바를 부지런히 왕복하며 칵테일을 새로 날랐다.수영복을 갈아입고 해변 모래톱으로 걸어들어오자마자 자리 잡을 생각 없이 절벽 저쪽으로 사라졌던 닐과 미셸, 부오빠와 다오가 돌아와서 우리가 잡은 카바나를 살피고는 바의 그늘로 몸을 피했다. 미셸은 남아서 여자 넷이 함께 girl group pic을 찍었다. 아까의 해변 관리인은 부탁하기도 전에 달려와 이 각도 저 각도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고 어마어마하게 큰 사마귀가 어디선가 날아와 카바나 정중앙에 착지하는 바람에 모두가 펄쩍..
나는 어릴 때부터 학교 국어 시간에, 혹은 일간지 사설에서 “한국어는 여러 다른 색을 지칭하는 형용사가 많은 언어”라는 주장을 자주 접했다. 이를 증명하는 사례로 노란, 샛노란, 누런, 누르스름한, 노리끼리한, 누르죽죽한 등의 형용어를 드는 것도 많이 보았다. 일단 같은 스펙트럼 안에 있는 색을 표현하는 단어 가짓수가 많으니 별 의문을 갖지 않고 그런가보다 했던 것 같다. 그런 색깔 이름들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 것은 아주 나중의 일이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안색이 좋지 않음을 한탄할 때, 열심히 요리했는데 결과물의 색감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언급하는 색의 이름은 반드시 "노리끼리", "푸르죽죽", "시커먼" 등이었다. 그 많은 한국어의 색상 이름들은 대개는 정말 색상표에 올릴 수 있을만한, 다른 색..
내가 켈리와 쓰게 된 트윈베드룸은 거실에서 미닫이문을 열면 들어올 수 있는 네모난, 욕조가 딸린 욕실과 화장실이 딸린 깨끗하고 조용한 방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켈리는 운동하겠다며 호텔 짐에 가고 없었고, 나머지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언니의 결혼식 하루 전 한국에서부터 다같이 자게 되고서는 짧은 잠이나마 깊이 드는 것 같아 눈을 좀 더 붙여보려고 누웠는데, 오래지 않아 아침 먹으러 갈 시간을 정하는, 단체카톡방에서 보내는 메시지들 때문에 폰이 웅웅 울려대서 일어나기로 했다. 아침으로 뷔페를 내놓는 레스토랑은 풀장이 있는 3층에 있었다. 밝은 햇빛 아래서 보는 파통 비치는 어제처럼 서해 앞바다 같은 느낌은 주지 않았으며, 위협적이지 않을 만큼만 푸르고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아침부터 더운 바람이 불어와..
여행은 언니의 결혼식 바로 다음날에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출발해 푸켓에 먼저 도착하게 될 나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짐을 끌고 아직 캐시와 켈리 빼곤 모두가 잠들어 있는 논현동 에어비앤비를 빠져나왔다. 도중에 현금을 뽑느라 atm이 문을 여는 7시까지 시간을 보내야 했고 덕분에 공항버스는 30분이 넘게 월요일 아침 교통체증 안에 갇혀 있었다. 역삼역에서 출발한 버스는 강남의 오만 데를 다 찍고 나서야 동작쯤에 진입했고 작년 9월 이후로 한번도 조선 밖에 못 나갔던 나는 그야말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빨리 나 공항으로 보내줘. 더는 1분도 못 참아. 한국어로 된 모든 음성신호와 미세먼지 때문에 회색으로 흐려진 하늘, 씨발을 연발하는 20대 초반 남자애들 중 어느 것도 더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
FAQ 1. 위치는 어디인가요? -> 홍대입구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비즈타운”으로, 지문인식 보안장치가 되어 있으니 출입에 관한 사항은 수업 참여가 확정된 분들께 다시 한번 안내드릴게요. 🤗 2. 가격은요? -> 1회에 90분 기준 2만 5천원으로, 4주에 10만원입니다. 과제 첨삭과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영어 카톡 대화가 포함됩니다. 현금영수증 발급 가능합니다. 3. 영어를 잘해야 수강할 수 있나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래 수강하신 분들 중에는 저와 수업하며 거의 1년 가까이 영어를 한마디도 안 하셨던 분도 계세요. 영어가 너무 싫어서 제가 아무리 영어로 질문해도 한국어로만 대답하셨만 지금은 조금씩 대화하며 마음을 많이 여셨어요. 🤗4. 한 반에 몇 명이 정원인가요? 6인이 최대입니다..
1. 오랫동안 영어를 배우는 데 관심이 있었지만 시험을 위한 영어만 공부하거나 1:1 회화 수업만 듣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분->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를 한 회의 90분 수업 동안 모두 커버하며 강사가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사용합니다. 단지 지시사항을 듣거나 질문에 답하시는 것만으로도 듣기와 말하기를 연습하실 수 있어요. 2. 영어를 잘하고 싶지만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잘해야 할지 모르겠다 & 영어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는데 배워야 할 것만 같아서 거부감이 들고 무섭다(하지만 시도해보고 싶다)-> 중요한 문법 사항을 중심으로 매주 "한국어와 영어가 어떻게 다른가"에 초점을 맞추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요소를 집중 공략합니다.-> 자기소개를 억지로 시키지 않고 게임을 하지 않습니다. 한국어를..
6학기 커리큘럼 “What’s your story?” 매주 한 문장, 혹은 한 단락씩 자기 이야기를 영어로 써서 8주 후에는 작은 에세이 하나 완성하기 1st week 시제와 수동태- 영어는 시간과 책임의 언어https://www.instagram.com/p/BL06JJrgqF6/?taken-by=esl_bilingualism 2nd week 감정 형용사- 스스로에게 안부 묻기https://www.instagram.com/p/BcuWlkAncFJ/?taken-by=esl_bilingualism 3rd week 동작 동사 혹은 phrasal verbs- 나는 오늘 어떻게 출근했을까?https://www.instagram.com/p/BcRjFaJAlqa/?taken-by=esl_bilingualism 4th..
얼마 전에 내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 중 한 명과 카카오톡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으로 시작한 대화 끝에 그는 “피곤하고 사는 게 넌더리난다”고 말했다. 임금은 물가가 오르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늙은 것은 무서우며 돈 없이 늙는 것은 더욱 무섭다고. 노년에 폐지를 줍는 삶을 살면 어떡하나 걱정이 된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걱정이다. 일일이 말하기에도 벅찬 고민들이다. 나 역시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지만 하는 일마다 희망했던 대로 되지는 않는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밤잠을 설치는 일도 자주 있다. 그래서 일단 “나도 지친 상태이다(I’m exhausted, too)”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지친 것과 공포는 구분해야 하며, 머릿속에서 공포를 만들어 내지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