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 대학 안에 있었던 여고에 다녔다. 산비탈 위에 올라앉은 그 학교는 아래쪽의 얼기설기 여러 갈래인 동네 골목길로도 접근이 가능했고 점심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남자 대학생들이 계단 아래에서 담배를 피우며 쳐다보기도 해서, 별로 바깥과 단절된 느낌이 아니었다. "바바리맨"이라고 불리던 성폭력범이자 노출증, 성도착증 환자도 간혹 나타났다. 아이들의 반응은 다양했는데, 내가 본 중 가장 적절한 대응이자 용감한 것 중 하나는 혼자 운동장에 벤치에서 밥을 먹다가, 운동장 아래 골목길에 나타난 바바리맨이 나타나 학생들이 웅성웅성 하자 조용히 일어나 그에게 냅다 식판을 던져버린 3학년 언니였다. 깔깔대며 남자를 조롱하는 아이들, 큰 소리로 욕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두어명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었다. 그들은 ..
12월 영작 3주 과정 안내 첫주 초급반 월, 수, 금요일(12월 3일/5일/7일) - 동일한 수업- 감정 형용사로 일기 쓰기 중급반 화, 목, 토요일(12월 4일/6일/8일) - 동일한 수업- 감정 형용사+시제를 사용해 자유롭게 타임라인 이동하며 하나의 사건 설명하기수업 엿보기: https://www.instagram.com/p/BhtYIJigkzP/ 둘째주 초급반 월, 수, 금요일(12월 10일/12일/14일) - 동일한 수업- 동사구(phrasal verbs)를 사용한 동작묘사하기(간단한 요리, 와인 따기, 못박기 등) 중급반 화, 목, 토요일(12월 11일/13일/15일) - 동일한 수업- 동사구(phrasal verbs)를 사용한 동작묘사하기(과정이 많은 요리, 요가동작, 종이접기 등)수업 엿보..
나는 스물아홉에 직장을 그만두었다. 두 개의 적금통장에 들어 있던 칠천만원을 모두 달러송금이 가능한 시티은행 계좌에 옮기고 외고와 자립형 사립고, 국제고에 진학하고 싶은 중학생들에게 스물세 단락짜리 토플 지문 가르치던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나는 한번도 가본 적 없었던, 영화에서나 보던 뉴욕으로 떠났다. 같은 해 여름 길에서 주운 노란 진돗개 믹스를 데리고. 나는 죽지 않았고, 강도당하지 않았고, 총 맞지 않았고, 사기당하지 않았다. 운명의 상대나 중동 부자를 만나지 않았고, 석사취득과 동시에 기적적으로 미국 학교에 선생으로 취업하지도 않았고, 갑자기 한식 사업가로 변신하지도 않았다.나는 한국에 돌아왔다. 그래도 내 삶은 지진이 난 것처럼 변했다. 나는 내가 결혼해서 딸을 하나 낳아 기를 사람이라는 아..
질문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마디도 안 지려고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 질문하는 것이 따지고 드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라도, 이기고 지는 것에 집착하는 언어적 특성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한국어는 언어적 밀치기에 최적화된, 일종의 말로 하는 닭싸움에 능숙한 언어다. “고객”에 “님”을 붙이고도 안심이 안되어 “께서”를 동원하여 혹시라도 기분이 상할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수준부터, 뭘 누구에게 달라는 것인지 주어도 목적어도 생략된 “내놔.”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위계가 이 미세한 언어의 눈금으로 구분될 수 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젊은 여성에게 중년의 남자가 “여기는 뭐가 맛있어요?”로 무난한 경어를 쓰는가 싶더니 곧 “아이, 난 생선은 안 좋아하..
개와 산책을 나가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개도 기뻐하고, 나도 바깥 공기를 쬐며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출근하느라 허덕이는 게 아닌, 혹은 퇴근하면서 하루 일로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며 돌아오는 게 아닌 일부러 짬을 내서 하는 산책은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집 앞 교차로의 큰 가로수들에 걸린 햇살이 얼마나 몽롱하고 예쁜지, 개들을 데리고가 아니면 입구도 들어가보지 않았을 낮은 뒷산에서 얼마나 좋은 풀내음이 나는지를 천천히 깨닫는 일은 하루치의 행복을 온전히 느끼기에 모자라지 않다.그러나 가끔 불쾌한 일을 경험할 때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대뜸 다가와 "개 물어요?"라고 묻는 사람들이다. 한번은 샌드위치를 사느라 개 두 마리를 가게 앞에 묶어두고 기다리게 한 후 나..
"4등"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대회에서 늘 4등만 하던 어린 수영 영재를 1등 하는 천재로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어머니와 코치의 이야기인데, 코치가 아동을 몰아세우며 훈련시키는 모습들이 내게 너무나 친숙한, 그리고 아마 많은 한국인들이 성장과정에 경험했을 그루밍grooming의 전형이라 놀라웠다. 아직도 아이들이 저런 방식으로 배우는구나 싶어 좌절스럽기까지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소년은 숨이 턱까지 차도록 수영장 레인을 왕복하지만 코치의 대걸레자루 세례를 받고, 젖은 등에 멍이 들 때까지 맞는다. 그리고 코치는 아이를 분식집으로 데려가 떡볶이와 핫도그를 사주면서 "너 잘 되라고 때리는 거지 미워서 그러는 게 아니다"고 은근한 태도로 달랜다. 아이는 반복해서 맞고, 욕설을 듣고, 또래들이 지켜보는..
어릴 적 급식을 받을 때, 밥을 꼭 크게 한 주걱, 다음엔 보통 주걱으로 두 번 퍼주시던 영양사 분이 계셨다. 그는 보통 말없이 배식에만 열중했지만 가끔 혼잣말처럼, 탄식처럼 "한번만 주면 정 없으니까!" 라며 박자를 맞추어 두번째 주걱을 급식판에 탁 털어주곤 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 "정"이 실체를 갖춘 무언가로 내 앞에 나타난 일이. 안 줬어도 상관 없었겠지만, 아니면 밥의 정량을 배식하기엔 너무 크거나 작은 주걱 때문일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내가 처음 목격한 "정"은 급식판의 오목한 곳에 떨어지는 두번째 밥덩어리였다.그 이후의 내 인생의 "정"들은 첫번째 것만큼 명료하거나 친절한 제스처를 포함한 것들이 아니었다. 사귀던 남자친구가 내게 정이 떨어진다고 말하거나, 엄마가 나더러..
나는 개를 기르는 1인 가정이다. 지금은 내 개인 골든두들 한 마리에, 가족을 찾을 때까지 임시보호중인 푸들까지 당분간 두 마리를 돌보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개를 키우는 것도 그렇다. 인간과 건강한 상호작용을 해야 건강하고 행복한 개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개를 산책시킬 때 우호적으로 반응하며 개에게 인사하거나 개를 봤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사람들 덕에 내가 개와 함께 사는 일이 나날이 조금씩 쉬워진다고 믿고 있다. 예전에 비해 개를 보고 갑자기 도망을 가거나 욕설을 퍼붓거나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이 훨씬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와 거리를 나선다는 것, 모르는 이들의 갑작스러운 접근에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
"드세다"는 말에 대해 두 번 생각해보지 않고 쓰던 시절이 있었다. 주로 동료 여성들에게, 특히 나보다 어린 여성에게, 그리고 동물에게 사용했다. 그들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은 때, 그리고 그들이 자기 지위에 걸맞지 않게 분노를 공적으로 표출할 때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형용어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구글 검색어 자동완성에 "드센 여자친구"는 있어도 "드센 남자친구"는 없다. 누군가는 "저러더 드센 여자래요. 드세면 안 좋은 건데. 뭐가 드세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면 안 드센 여자에요?" 라고 집단지성에 도움을 요청한 글이 보이기도 한다. 이 질문에는 다수의 답변자들도 갈팡질팡한다. "생활력도 있고 추진력도 있고, 자기 생각도 강한 사람이란 뜻도 있는 거 아닐까요."라며 좋게 해석해 주는 위로의..
1st week시제 part 1- 시제는 영어의 맥락을 얼마나 바꿀까? 현재완료와 진행형을 중심으로 여러 시제 살펴보기 참고: http://pupper.tistory.com/18?category=967451 2nd week감정 형용사- "기분 나빠,"를 넘어서서 좌절, 모욕, 불쾌, 소외 등의 감정을 언어화하고 적절한 형용사로 서술하는 연습 참고: "kibun과 feelings:나는 오늘 어때?"http://pupper.tistory.com/15?category=967451 3rd week동작 동사(phrasal verbs)- 언어를 시각화하기 참고: "'언제 날아왔어?'가 무슨 말이냐고? 구동사(phrasal verbs)의 숨은 힘" http://pupper.tistory.com/47?category=..